어머니와 나, 한겨레 인터뷰

Posted by on May 24, 2018 in 링크,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한겨레의 강성만 선임기자님과 나눈 대화가 <짬> 코너의 도서 관련 인터뷰 기사로 실렸습니다. 교보의 5월의 책 선정도 그랬지만 이번 인터뷰도 책의 내용을 보시고 연락을 주셔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한 시간 반을 쉼없이 떠들었는데, 강성만 기자님께서 차분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생각보다 큰 지면을 허락해 주셔서 적잖이 놀랐네요.

기사 중에서 저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

“올해 6년차 비정규직인 아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충고는 비슷한 온기의 답과 만난다. “지금 먹고사는 것만도 감사하지. 물론 네가 정규직이 되면 좋겠지만, 지금 고생하는 거 잊지 말아라. 잊으면 고생한 게 의미가 없잖아.”(어머니) “고마워요. 고생이랄 것도 없지만 잊지 않겠습니다.”(아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자식, 대화, 소통, 이해, 세대간의 관계 등등이 키워드였죠.

강기자님: 그래서 어떻게 해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나: 음… 사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잘 모르겠구요. 제가 관심을 갖는 말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말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의 말도 상대의 말도 무겁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 이 대화는 서로의 삶의 역사 속에서 빙산의 일각처럼 작디 작은 것이라는 것, 말을 통해 상대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충되는 듯하지만 두 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대화하는 사람들이어야 소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음…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잘라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어머니와나 #인터뷰 #한겨레 #짬

http://v.media.daum.net/v/20180522183616705?f=m&rcmd=rn

이어폰과 인생

Posted by on May 22,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어쩌다 짬이 난다. 음악을 고른다. 이어폰을 꺼낸다. 풀 수 없을 만큼 엉켜 있다. 낑낑대며 푸는데 반격이 만만찮다. 그렇게 쉽개 풀리면 내가 이어폰이 아니지, 하는 것만 같다. 줄은 유연한 무생물이지만 이어폰은 굽힐 줄 모르는 짐승이다. 허나 시간은 나의 편이지. 후훗. 마지막 매듭이 풀린다. 아뿔싸 또 다른 일이 터진다. 이어폰은 다시 주머니 속 깊고 어두운 곳으로 유배된다. 일에 열중한다. 이어폰은 다시 광속으로 스스로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일이 끝나고 다시 이어폰을 꺼낼 때 쯤이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문제를 푸는 동안 줄은 꼬인다. 줄을 푸는 동안 문제는 다가온다. 음악은 결코 전화기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것이 삶의 작동방식일지도 모른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문법번역식 교육

현재 국가 교육과정의 이론적 뿌리가 되는 의사소통적 교수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의 지속적 영향 속에서 적어도 이론의 영역에서는 문법번역식 교육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문법 공부와 번역 연습이 외어학습의 주요 전략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법학습이냐, 어떤 번역 과제냐이지 문법과 번역 그 자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문법과 번역은 재창조(reinvention)의 대상이지 버려야 할 구습이 아니다.

흔히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고 떠들면서 ‘도매금’ 천사를 동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생각만 할 수 있는 능력

Posted by on May 19,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생각만 한다”는 실행력 부족을 나무라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담고 있기도 하다. 뭐든 다 직접 해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지금 여기 눈 앞의 공간과 지각할 수 없는 공간을 연결한다. 생각만 하는 능력이야말로 현실을 뛰어넘는 능력인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인공지능 시대의 능력주의

Posted by on May 15, 2018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주장에는 “이미/언제나 있었던 인간의 시대, AI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빠져있다.AI의 고도화에 따라 ‘능력주의 (meritocracy)’는 또다른 옷을 입고 인간을 옥죄게 될 것이다. “AI 대 인간”의 구도는 언제나 “인간 대 인간”의 구도로 바꾸어 이해해야만 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클리셰

Posted by on May 14, 2018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강의 10년차, 이제 ‘초짜’라고 부를 수는 없게 되었건만, 처음보다 더 나은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시간강사를 “(명사) 아는 척 하느라 엄청 바쁘고, 바쁜 척 하다가 좀 알게 되는데, 그땐 또 잘 모르는 걸 가르쳐야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적이 있다.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의 근원에는 이런 상황이 있다. 돌파하자고 결심을 하지만 매번 다시 쳇바퀴 도는 삶으로 던져진다. (이 상황의 근원에 나약함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괄호 안에 넣어두기로 한다. 이게 본문이 되면 삶이 너무나도 괴로울 터이니.)

한편 이젠 무슨 이야기를 해도 ‘클리셰’로 느껴지곤 한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일텐데도, 내 머리 속에서는 진부한 것 투성이다. 전에 했던 이야기,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지식, 더이상 영감의 원천이 되지 못하는 가르침 따위 말이다.

지식이 전달(deliver)될 수 없고 구성(construct)된다는 것은 단지 지식의 인식론적 지위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이 누군가에게 체화되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구성주의는 관계를 맺는 데 요구되는 시간에 대한 담론이다.

교사는 배움의 시간과 조응하는 자신의 시간에 대한 응시를 통해 성장한다. 가르침은 특정한 세계에 천착하며 긴 시간을 살아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커 파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르칩니다. (We teach who we are.)”라고 말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의 말을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풀면 이렇다.

“우리는 특정한 주제에 관해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 주제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학생들 앞에서 풀어내는 것이지요. 꼬여있는 시간을, 툭툭 끊어진 시간을 풀어낼 순 없어요.”

단단한 실타래가 되지 못한 지식으로, 자신을 감화시키지 못하는 지식으로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시도는 얼마나 얄팍한가. 나는 얼마나 얄팍한가. 이런 생각이 자주 찾아오는 요즘이다.

저녁 수업 준비를 해야겠다.

On native-speakerism

Native-speakerism is a powerful ideology machine that mass-produces unfairness, contempt, inferiority, and frustration. It ruthlessly divides native and nonnative speakers, veils the hard fact that we are all legitimate users of a certain language, and naturalizes sociocultural, economic biases against second and foreign language learners. Through this seldom-challenged mechanism, it effectively molds discrimination out of differences, It mimics racism in placing the categorical value on a birth-based capacity, and colludes with the ‘sacred’ meritocracy by establishing native speaker-favored standards, qualifications, and market environments. Where native-speakerism prevails, foreign language learning functions as a viable tool for the old ruling strategy: divide and conquer. So I remind myself that I do not need to say, “I perfect understand what you mean by that. However, it is wrong: native speakers would not speak like that.” No, they’re not wrong. I am wrong. There utterances communicate: my judgement blocks.

함께 기억하기, 우리의 말을 만들어가기

Posted by on May 12,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금요일 오후, 1년 만에 한 학생을 만났다. 여름 졸업 예정으로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그는 수업이 없는데도 나를 만나러 학교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읽으시면 많이 웃으실 거예요. 그리고 제가 두 페이지나 썼어요!”라며 편지를 건넸다. 나는 편지를 열어보기도 전에 내내 웃고 있었다.

돌아와 책상에 앉아 편지를 읽어내려가다가, 한해 전 <언어와 사고> 수업에서 내가 했다는 이야기와 마주쳤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듯이, 자기 인생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안다고 뽐내지 말고 나그네처럼 지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 아마도 앎과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꺼낸 이야기이리라. 그의 글을 통해 돌아온 말은 이제 ‘나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말’로 기억될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으로 수업을 경청하던 그가 진학에 성공해 멋진 교사로 성장하기를, 나그네 된 선생들로 만나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쌓여가는 책

Posted by on Apr 28, 2018 in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읽을 책이 쌓여간다”고 말하지만

“안읽을 책이 쌓여간다”가 중단기 데이터를,

“버릴 책이 쌓여간다”가 중장기 데이터를 좀더 잘 반영한 진술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변화의 메커니즘

Posted by on Apr 23,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자신이 쓰는 말 하나하나가 국어를 바꾼다는 생각을 못하지만, 이 메커니즘을 제외하고 언어 변화를 설명할 길은 없다. 자신의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못하지만, 이 메커니즘을 제외하고 역사와 사회의 변혁을 설명할 길은 없다.

큰 일을 이룰 방법은 작은 일밖에 없다. #다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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