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Dec 14, 2017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일상스케치

1. “선생님하고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수업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 – 이거 칭찬인듯 하면서 칭찬 아니다. (유사품으로 페이스북에 인물사진 잔뜩 올린 사람에게 ‘실물이 훨 나으세요.’ 시전하기가 있다.)

2. 어쩌다 보니 글쓰기와 멀지 않은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 바닥에서는 출판(publication)이 최고의 (교환)가치를 지닌다. 공적 영역에서 전문가들에게 인정받는 글이기 때문이다.

반대쪽에는 사라져가는 편지가 있다. 삶을 나누고 시대를 함께 앓으며 치유할 수 없는 상처에 입맞추는 글. 논리와 어리석음이 교차하고 실없음과 시시함이 껴안고 뒹굴어도 괜찮은 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람 둘 사이의 글.

요 며칠 예전 동료들과 글을 주고받으며 광장이 아니라 마음을 향하는 글의 힘과 향기를 새삼 느낀다.

3. 학기 후반,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도 볼 틈 없이 바빴다. 내일이면 학기가 끝나고 채점과 성적처리만 남는다. 1월부터는 또 정신없이 움직일 것 같아서 12월 하순을 최대한 비웠으나, 집채만한 일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졌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방학이라기 보다는 유연근무제 시행기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4. 약속을 잡고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분주함은 기다림의 설렘을 앗아간다. 덜 바쁘면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징후이다.

5. 2017년 2학기는 다시 쓰기 시작한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학위논문 집필 후 가장 많은 분량을 써냈다. 그래봐야 남들에 비하면 얼마 안되지만 다시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내 등을 툭툭 두드려 주고 싶달까. 책을 궁리하고 함께쓰기를 계획한다. 전에 이야기했던 First Chapters도 시작해 볼까.

발견되는 글

갈수록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예를 들어 500 단어의 글을 쓰는 일은 단어 하나 하나를 써서 500 단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500개의 단어 연쇄(500-gram) 중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1부터 500까지의 빈칸에 단어들을 하나 하나 대입해보는 작업이다. 늘어선 500개의 단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린 오래 전부터 여기 함께 있었어요’라고 외치는 순간 글은 완성, 아니 발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이 자신의 글을 고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발견한 글은 이게 아닌데, 왜 이걸 발견했다고 하는 거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내가발견하려던글은아니지만

강사법, 네 번째 유예

Posted by on Dec 6,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시간강사법이 또다시 유예되었다. 벌써 네 번째다. 통과가 되었어도 심각한 문제가 파생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교육부나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립서비스’만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당사자들간의 의견 불일치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강사들의 교원지위 획득 가능성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강사법의 탄생에는 서정민 (2010년 당시 45세) 박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죽음은 너무 쉽게 잊혀지고 결심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그가 대학에 대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한국의 대학 사회가 증오스럽습니다.”

영어학습의 내러티브

Posted by on Dec 4, 2017 in 삶을위한영어공부, 수업자료 | No Comments

한국사회에서 외국어학습의 내러티브는 성공과 실패, 투자대비 수익, 수준 도달 혹은 미달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는 학습의 궤적을 좁디 좁은 사다리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여기에서 자신의 영어는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미끄러지거나, 남들에 비해 더 위에 있거나 비슷하거나 아래 있다.

이같이 수직적인 서사의 틀(narrative template)을 다양한 경험, 재미, 만남, 감동, 깨달음, 멋진 순간들로 바꾸어 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놀고, 깨닫고, 발견하고, 웃고, 떠들고, 농담을 주고받고, 눈물지은 순간들로 만들어진 기억으로 바꾸기 위해 해야할 일 말이다.

수년 간 학생들의 영어학습 자서전을 읽으면서 갖게 된 화두입니다. 구상하고 있는 #삶을위한영어공부 원고의 핵심 문제의식이기도 하구요.

독서모임 First Chapters

Posted by on Dec 3,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이런 이름을 가진 영어 독서 모임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와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도 좋지만 저처럼 이책 저책 유랑하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책의 첫 장 혹은 서문을 꼼꼼히 함께 읽고 나머지를 읽을지는 각자가 결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겁니다. 책읽기를 제안한 사람은 저자에 대해 대략의 정보를 준비해 오구요. 대개의 책들은 첫 장만 꼼꼼히 읽어도 저자의 집필 의도와 책 전체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독서모임 포맷입니다.

넵, 기말입니다.
딴생각이 화수분처럼 샘솟는 계절이죠.

함께 고생하는 분들,
온갖 딴생각들과 동행하며
넉넉히 살아남으시길 빕니다. :)

인풋 패러다임과 모국어 지식

한국 영어교육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단연 ‘인풋(input)’이다. 영어는 영어로 배워야 하고, 영어에 많이 노출(exposure)될 수록 영어를 잘하게 된다는 요지다.

외국어 학습에서 언어입력(input)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타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기타를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외국어 이해에 있어 한국어 배경지식이 갖는 중요성은 좀처럼 강조되지 않는 것 같다. 외국어를 읽고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국어에 대한 지식과 세계에 대한 지식 모두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아마도 한국어 자막의 효용일 것이다. 특정 외국어에 익숙한 학습자들의 경우에 잘 들리지 않던 뉴스 혹은 드라마도 한국어 자막과 함께 보면 들리는 경우가 많다. (진짜 들리는지 확인하려면 랜덤 샘플링을 통해 받아쓰기를 해보면 될 터이다.) 이는 외국어의 단어나 소리 자체가 청자에게 전달된다기 보다는 (한국어로 된) 배경지식과 상호작용하며 뇌에서 처리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종종 털어놓는 걸 보면 필자만의 경험은 아닌 듯하다.

한편 이러한 현상은 모국어와 외국어의 상호작용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짐을 시사한다. 신경언어학의 연구는 사춘기 이후 외국어를 처음 배웠을 경우 모국어(L1)와 외국어(L2)가 사뭇 다른 ‘회로’와 활성화 패턴을 통해 처리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 자막이 외국어 이해에 실시간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다수의 경험은 L1과 L2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엄밀한 연구를 위해서는 학습자들이 자막을 켜고 영상을 볼 때 ‘들린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어디까지가 실질적 이해이고 어디까지가 ‘이해했다는 착각’혹은 사후적 합리화인지 밝혀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예를 들어 나와 같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능숙한 학습자가 영미권 드라마를 볼 때엔 다음과 같은 점을 가정할 수 있다.

1. 영어 구어체에서 사용되는 어휘적, 문법적 패턴에 익숙한 편이다. (해당 언어의 일상어(colloquial language) 전반에 대한 지식)

2. 드라마의 전개상 해당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대략적인 감을 가지고 있다. (기존 스토리라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추측(inference) 메커니즘 작동중)

3. 드라마의 소재가 특이하지 않다면 해당 대화에서 나올 수 있는 대략적인 어휘셋(lexical sets)에 대해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드라마의 내용과 연관된 어휘지식)

4. 드라마의 시즌이 6-7 정도 된다면 이전 에피소드들을 통해 주요 인물들을 대화 패턴을 암묵적으로 익혔다고 볼 수 있다. (개별 인물에 대한 암묵적 지식)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자막을 켜고 볼 때 나의 뇌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언어 능숙도에 따라 어떤 변화 패턴을 보이는가?

이런 주제로 깊이있는 연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실용적인 면에서도 “자막은 금기입니다”나 “무조건 자막 끄고 10번 이상 보세요”보다 나은 설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순화 시도에 대한 단상

소위 ‘언어순화’ 시도가 별 의미가 없지 않나 하는 주장에 대해 달았던 답글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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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독립된 시스템으로 보면 말씀하신 의견이 일리가 있습니다. “창녀” 혹은 “성노동자”가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세 가지 점에서 이와 같은 의견이 어느 정도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각각의 단어들이 어떤 담론장에서 사용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위에서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근로자’와 ‘노동자’는 같은 대상을 가리킬지는 모르나, 둘 중에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가는 단순히 단어교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담론장의 권력을 언어에 주류로 편입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근로자’대신 ‘노동자’를 쓸 경우 이는 단어 대 단어의 관계가 아니라 담론장과 담론장의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신경언어학적 고려입니다. 과연 사람들은 ‘창녀’와 ‘성노동자’를 들었을 대 똑같은 생리적 반응을 보일까요? 욕설이나 금기어의 존재를 보면 분명 특정한 단어들은 다른 단어들에 비해 격한 정서적/생리적 반응을 이끌어 냅니다. 이런 면에서 특정한 단어가 다수의 언중에게서 보다 격한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것이 사회변화의 걸림돌이 된다면 다른 단어의 활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기표의 교체가 갖는 중재(mediation)의 효과입니다. 최근에 ‘블라인드 채용’과 관련하여 ‘편견 최소화 채용’을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이 둘이 가리키는 것은 동일합니다만, 채용과정의 어떤 면을 프레이밍의 중심으로 삼을 것인가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나아가 이런 프레이밍은 정책결정자들이나 실무담당자들이 채용과정을 재설계할 때 일종의 중재적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정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줄이는 게 중심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즉, 언어의 변화는 그 자체로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다른 심리적 요인들을 추동하는 매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거에서 말씀하신 바를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무의미한 노력이 될 때도 있지만,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단초가 될 수도 있죠.

그렇기에 ‘언어순화’ 자체로 효용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고, 그에 수반되는 사회문화적, 제도적, 정치적 변화를 면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대하여 말씀하신 원리를 적용하려 하기 보다는 담론장과 권력의 문제를 심도있게 고려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 답글 —

말씀하신 대로 언어의 의미장 변화는 사회적 변화를 수반해야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정치사회적 지형에서 ‘창녀’ vs ‘성노동자’의 경우 어떤 호칭이 긍정적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이안님께서는 계속해서 ‘창녀’를 쓰면서 다른 활동을 전개하는 것 나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이고, 저는 ‘성노동자’라는 말을 쓰면서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논쟁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런 명칭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의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상 많은 상황에서 사회변화의 가장 큰 동력은 그 명칭으로 호명되는 이들이었습니다.

참고
http://pjos.org/index.php/pjos/article/download/15179/13734

 

[의사소통행위의 언어학 a linguistics of communicative activity (LCA)] 어떤 글은 곱씹을수록 진가가 나온다. 별것 아닌 선언인 것 같지만 언어를 자기충족적이고 완결된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활동으로 보게 된 것은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고전적인 경제이론이 나름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인지와 정서라는 요인을 간과해 왔듯이 구조주의 언어학은 형식적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오용하고 배반하고 변화시키는 언어사용자의 사고와 감정 나아가 언어가 정체성과 권력에 미치는 깊은 영향을 간파하지 못했다.

새벽에 간만에 온라인에서 이런 저런 논의를 하다가 생각이 나서 찾아본 챕터. 논문이 실린 책의 제목은 <Disinventing and Reconstituting Languages>이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37201231_Thorne_S_L_Lantolf_J_2007_A_Linguistics_of_Communicative_Activity_In_S_Makoni_A_Pennycook_eds_Disinventing_and_Reconstituting_Languages_pp_170-195_Clevedon_Multilingual_Matters

블라인드 채용 vs. 편견 최소화 채용

Posted by on Nov 25, 2017 in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블라인드 채용’ 말고 ‘편견 최소화 채용’으로 쓰면 어떨까? 말은 말뿐이라고 하지만 일단 말부터 바꾸고, ‘편견 최소화 채용’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 제안에 누군가는 ‘묻지마 채용’ 아니냐고 답하겠지만, 채용과정상의 편견을 최소화하고 보다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자는 대의에는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미약하게나마 ‘블라인드’에 남아있는 차별의 흔적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운칠기삼(運七技三)’ 단상

Posted by on Nov 24,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운과 기를 나누는 것이 마치 본성과 양육을 나누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일례로 ‘네가 지금 쓰는 글은 너의 유전자 45, 사회문화적 요인 55로 설명 가능해’라고 하면 그저 우습지 않겠는가? 하지만 운과 기의 비율을 굳이 나누어 보라 한다면 ‘운9999에 기1 정도 아닐까’,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룬 이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운의 작용이 아무리 크다 해도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인 1을 이루기 위해 쏟는 피땀은 소중하고 본질적이며 당사자에겐 그 무엇보다 거대하고 뜨겁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약하고 미약할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만 분의 일에 불과하다 하여 가벼이 여기지 않고 싶다.

나아가 나에게 허락된 9999의 좋은 운들을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되길, 누군가에게 허락된 9999의 운이 나에게도 허락될 수 있길 바란다. 그리하여 9999에 대한 불만과 좌절, 걱정과 비난으로 삶을 소진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만 충실히 갈고 닦아도 살만한 사회가 되기를 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구글 번역 관련 수업 단상

1. AI의 시대 ‘영어교육이 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보다는, ‘리터러시 교육에 있어 모국어, 외국어, 정보기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훨씬 더 유효하다.

2.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AI’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어교육만 위기는 아니다. 가르칠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채널과 효율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3. 따라서 ‘영어교육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의사소통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과 소셜 네트워크가 세상을 빠르게 바꾸었듯이 통번역 기술의 발달은 문화간 소통의 지형을 빠르게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4. 통번역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데이터 과학의 성과를 모두에게 손쉽게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의 고도화가 더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스와힐리어 문헌을 해독하고 아프리카 문화권의 정보를 손쉽게 가공할 수 있다면?

5. 그런 의미에서 중장기적인 통번역 기술의 발달을 영어교육 전공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문화간 소통의 획기적 증가라는 전지구적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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