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Posted by on Dec 10,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인사이드 르윈>을 보면서 <사랑의 블랙홀>(1993)이 떠올랐다. 자고 나면 같은 날, 같은 장소. 내일이 오지 않는 오늘의 무한 루프 속에서 빌 머레이는 두려움 없이 온갖 일들을 감행한다. 차에 깔려 죽어봐야 내일, 아니 오늘 오전 여섯 시면 불사조로 다시 환생할테니까!

타인의 기억과 나의 기억을 완전히 갈라놓는 시간의 블랙홀. 이 기이한 힘에서 그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눈부신 사람,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앤디 맥도웰로 모든 것이 바뀐다. 사랑은 블랙홀의 중력을 능가하는, 아니 능가해야만 하는 힘이 된다.

반면 <인사이드 르윈>의 시간은 내면을 향한다. 르윈의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무한히 반복되는 원이다. 궁핍하고 답답한 일상은 잔잔하다 못해 잔인하다. 듀엣을 하던 친구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아버지는 자신만의 기억 속으로 숨어버린, 가족과 친구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루저’로 살아가는 르윈에게 유일한 희망은 노래 같다. 하지만 한겨울 일리노이 벌판의 눈폭풍보다 더 지랄맞은 세상에서 그의 음악은 출구가 아니라 시궁창같은 현실로 끌어 내리는 냉혹한 힘이 되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초반부 그의 노래에 “Hang me, hang me”라는 대목이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랑의 블랙홀은 ‘블랙홀’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랑으로 극복 가능한 세계를 그린다. 시간의 블랙홀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사랑,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하지만 ‘인사이드’ 르윈의 세계는 ‘블랙홀’은 아니지만 구질구질한 일상의 무한반복이다. 초자연적인 시간법칙이 작용하지도 않는다. 일상의 ‘바깥(outside)’은 없다. 르윈이라는 인간으로 사는 동안 ‘아웃사이드 르윈’을 경험할 방법은 없으며, ‘인사이드 르윈’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름다움이 없는가. 그렇진 않다고 말하고 싶다.

르윈은 ‘돈은 안되지만’, 외부로 향하는 언어를 놓아버리고 내면으로 도피한 아버지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 수 있는 노래를 부른다. 모진 척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대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촉수를 지녔다. 내가 <인사이드 르윈>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은 일상을 구할 사랑은 없다는 것, 하지만 일상을 적실 사랑은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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