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처를 취하는 일이 부자연스러운 이유

Posted by on Dec 13, 2014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일상 | No Comments

일상생활에서의 자연스런 제스처는 본인이 의식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제스처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죠. ‘내 손 움직이는 걸 내가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면서요.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스로가 제스처를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동양사람들은 제스처가 많지 않다는 비과학적 견해를 제게 적용한 것도 이런 오해에 한몫을 했구요. 그런데 어느 날 수업 분석용으로 촬영한 비디오를 보니 제가 생각보다 팔을 이리 저리 휘젓는 일이 많더군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동양인이라고 해서 제스처가 적다는 생각은 사실과 거리가 멀더군요.

사실 심리언어학의 관점에서 제스처는 말보다 훨씬 더 솔직한 표현방식입니다. 말은 이리 저리 꾸며댈 수 있다고 해도 순간 순간 자연스럽게 나오는 제스처를 의식적으로 제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죠. 말과 동기화되어 나오는 제스처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구요.

이렇게 의사소통에 수반되는 제스처는 의도적으로 ‘취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제스처를 취하다’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제스처’와 ‘취하다’ 사이에 의미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사회에서 ‘제스처 취하기’는 점점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쪽에서 이런 제스처를 취했으니 우리는 이런 제스처를 취해 주면 되지 않나’같은 생각이 비일비재하니까요. 제스처를 ‘취할’ 때 우리 몸은 진실을 드러내기 보다는 가리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인데, 그걸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죠.

다들 뻔히 아는 제스처를 취하고, 그걸 살아가는 방식으로 삼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걸 가진 이들이 거짓 제스처를 주고받는 쇼는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덧댐: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언론을 통해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사과드린다”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그 표현 후에 진짜 고개를 숙여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군요. 이때는 ‘고개숙여 사과한다’라는 말이 말이 아니라 제스처가 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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