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드럼 연주자에게서 배우는 것

Posted by on Dec 15,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인데 잠시 드럼을 배운 적이 있다. 짧은 기간 내가 배운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박자를 유지하는 것이 화려한 테크닉보다 훨씬 어렵다. 드럼이 박자를 맞추기만 하는 악기는 절대 아니지만 박자를 잡아주지 못하는 드럼은 별 쓸모가 없다. (2) 안쓰던 사지 근육을 쓰게 되는 건 참 좋다. 하지만 온몸이 꼬이면서 ‘내 사지도 내 마음대로 못해!’라는 고통의 외침이 수반된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3) 젓가락에서 의자 팔걸이까지 뭘 보든 타악기로 변신시키려 든다. 당구 초보에게 교실이 ‘다이’가 되고 친구들의 머리가 당구공으로 보이는 것처럼. (4) 되돌아 보면 할머니의 다듬이질은 정말 훌륭한 타악기였다. 몇달 쯤 밤낮 없이 고무판을 열심히 치다 보니 예전 할머니만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5) 어설프게 배우고 그만두니 드럼 프로그래밍에 별 도움이 안된다. 리듬을 설계하려면 실물 드럼을 배우는 것보다 리듬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후에도 훌륭한 드러머들의 연주를 들으며 인생에 대해서 배운 게 있다. 소위 ‘드럼 고수’가 되어가면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박자, 즉 자신만의 리듬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한 마디를 4개로 쪼개어 연주할 때 5개로 쪼개어 연주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엇박자가 드러머를 곡 밖으로 튕겨나가게 하진 못한다. 남들이 네 걸음 걸을 동안 다섯 걸음을 걷지만, 더 큰 그림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언제든 자신의 리듬을 탈 수 있지만 결코 음악을 벗어나지 않는 능력.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휘몰아치는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나에겐 자신만의 박자를 연주할 수 있는, 그러나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연주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드럼은 내게 “‘그들의 리듬’에 매몰되지 말고 ‘너만의 호흡’을 만들어 가라”고 이야기한다.

자 이제 숨을 쉬자.
다른 시간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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