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는 비유일 뿐이고, 유희는 유희일 뿐이다 (?)

Posted by on Dec 30, 2014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1. 얼마 전 한 메일링리스트에서 “Boot camp”라는 명칭에 대해 의견이 오갔다. 방학중 글쓰기 집중훈련 코스를 “writing boot camp”로 이름짓는 데 대해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군대문화를 몸에 새기려는 목적의) ‘신병훈련소’ 정도의 뜻을 지닌 ‘boot camp’가 글쓰기 훈련 프로그램의 명칭으로 알맞은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괜찮다는 의견은 “글쓰기 프로그램이 ‘boot camp’라는 이름을 쓰더라도 형식과 내용이 교육적이며 민주적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아울러 ‘deadline’이라는 용어도 미국 남북전쟁 중의 포로수용소에 관련된 용어였지만 지금은 모두가 거리낌없이 쓰고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자유로운 사고표현과 창의성을 진작하려는 작문교육 프로그램과 boot camp 라는 용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비유의 효용과 영향은 비유 사용의 주체, 맥락, 의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비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암묵적 힘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boot camp를 다른 용어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위 논의는 “비유는 비유일 뿐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Deadline의 어원에 관한 설명은 아래에서:
http://www.todayifoundout.com/index.php/2014/01/origin-deadline/)

2.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꽤 오래 전부터 유행하는 놀이가 있다. 대략 이렇게 진행된다.

(1) 손가락을 권총 모양으로 해서 냥이들을 겨눈다.
(2) ‘빵(이야)’를 외치며 권총이 발사되는 상황을 묘사한다.
(3) 그 순간 냥이들의 반응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올린다.

훈련에 의한 것인지 자연스런 반응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그럴듯한 연기를 보여주는 냥이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제대로 된 연기’는 많은 ‘좋아요’를 획득한다. 사람들은 친구들을 소환하여 같이 보기를 권한다.

물론 냥이를 향한 ‘손권총질’은 유희의 일종이다. 아이들이 주먹싸움을 하고 전쟁놀이를 하며 웃고 떠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빵이야’ 동영상을 보다가 씁쓸해졌다. ‘과연 유희는 유희일 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총쏘는 역할은 사람, 쓰러지는 역할은 냥이가 맡는다. (적어도 내가 본 영상에서 냥이가 총을 쏘고 사람이 쓰러지는 걸 보지 못했다!) 총이라는 물건은 인간이 만들어 낸 전쟁과 사냥의 도구다. 그것이 인간에 의해 사용되고, 그에 ‘적절히’ 반응하여 ‘죽는’ 시늉을 하는 고양이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이 비대칭적 구조 속에서 권총놀이는 그냥 재미난 놀이일 뿐일까?

3. 나와 다른 비유를 사용한다고 무조건 반대할 마음은 없다. 내가 반기지 않는 유희를 즐긴다 해서 비난할 생각도 없다. 다만 늘상 사용하는 비유, 다같이 웃고 떠드는 유희가 그저 비유이고 유희일 뿐인지, 아니라면 어떠한 사회문화적, 정치적 뜻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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