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정복, 영어정복

Posted by on Jan 16, 2015 in 말에 관하여, 영어 | No Comments

“주요 국가 중 ‘암정복’이란 용어를 아직 쓰고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음. 미국은 암관리, 일본은 암극복으로 바꿨음.” – 황승식 선생님

‘영어정복’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 사용해 온 탓에 얼떨결에 튀어나오기도 하는 용어죠.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국어정복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영어정복이라니요. ‘정복’이라는 메타포가 담고 있는 함의를 생각해 보면 영 맘에 들지 않는 용어입니다.

언젠가 한 대학원생이 해준 이야기입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영어는 OOO다”라는 문장을 주고 빈칸을 채워보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짱구”라고 썼답니다. ‘영어는 자기 맘대로 안되고 지 맘대로 행동해서’ 짱구라고요. 이 짧은 답변에서 영어는 길들여야 하는 존재겠지요. 이런 기발한 대답들이 꽤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3학년 학생들은 어떨까 싶어 동일한 질문을 던졌답니다. 그런데 “영어는 어렵다”와 “영어는 지겹다”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하네요. 이걸 가지고 아이들의 상상력이 추락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영어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과목이 되었다는 사실이겠죠.

아마도 ‘정복’의 메타포, 이와 궤를 같이하는 교수학습전략이 학생들의 답변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에도 몇몇 학원들에서는 한 번 갈 때마다 50개에서 100개의 단어를 외워 시험을 본다고 합니다. 많은 수강생들은 단어시험과 결과에 따라 부과되는 과제 및 타율학습 때문에 학원에 가기 싫어한다고 하구요. 단기간에 일정 수준의 영단어를 <정복>해야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빈약하고도 폭력적인 논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압도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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