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메타포에 대한 글에 한분이 의견을 주셨기에 후속 답글을 남겼다.

Posted by on Jan 29, 2015 in 단상,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원글: http://slownews.kr/36672

일단 (1) ‘과학’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또 (2) ‘메타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현재의 과학 혹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등장하는 메타포에 대한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OOO선생님이 제시하신 의견을 반박한다기 보다는 제가 이해하는 바를 간단히 써보겠습니다.

1. (들어가기 전에) 저도 선생님 말씀대로 프로이드의 이론은 현대 과학의 다양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증거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메타포가 만들어지는 것과, 개인의 경험과 직관, 임상경험을 종합해서 메타포로 가득한 이론체계를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프로이드의 이론은 엄밀한 과학이라고 볼 수 없겠죠.

2. 심리학의 예를 드셨기에 그 연관 분야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인지과학은 심리학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학문적 흐름이 융합되면서 시작되었죠. 그중 하나가 컴퓨터 사이언스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현재 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은 input/process/output/retrieval/store/register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정보처리 프로세스와 인간의 사고를 유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인간의 사고를 모델링함에 있어서 컴퓨터를 가져왔을까요? 인간이 자신의 사고를 비교한 대상은 컴퓨터만이 아닙니다. 시계가 가장 복잡한 기계인 시대에는 시계를 그 대상으로 삼았었죠. 전화가 등장했을 때는 전화교환기를 유비로 사용하기도 했고요.

이를 종합하면 아마도 현재 인간의 과학문명과 기술발달의 단계에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기계가 컴퓨터이기에 인간의 사고흐름을 컴퓨터의 정보처리에 빗대어 이해하고 용어를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데이터는 계량화가 가능합니다. 데이터 하나 하나의 수치에 대해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학이론이 추구하는 바가 복잡다단한 데이터를 통해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뇌과학의 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데이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기존의 이론적 체계, 집적된 성과들과 어울려야만 이론 내로 편입되게 됩니다. 뇌에서 나온 데이터 혹은 영상 몇 개로 인간의 사고과정을 기술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혹시 영화 ‘트랜센던스’를 보셨다면, 실시간으로 인체 내의 모든 정보들이 스캐닝되는 시스템이 등장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공상과학이라 가능한 일이지만, 그게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 데이터들을 꿰지(weave) 않으면 그 사람의 심리를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겠죠.

이러한 종합의 과정은 특정한 프레임워크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때 (과학자를 포함한) 인간은 해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해석의 과정 속에 특정한 프레임워크/모델 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구요.

3. 마지막으로 저에게 친숙한 언어습득론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input/processing/ouput 개념은 언어습득이론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무언가 자극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고, 이것을 ‘처리’하고, 그것을 통해 ‘외부’로 뭔가 내보내는 과정이 반복되고 축적되면서 언어 습득(acquisition)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언어습득을 이해하는 모델로 컴퓨터가 아닌 생태계(ecology)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input이 아니라 affordance라는 개념이 언어경험을 표현하는 ‘메타포’가 되겠지요. 이런 주장을 펴시는 분들도 조금 있지만 과학계 전체로 보자면 소수죠.

4. 서두에 밝혔듯이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을 수 있고, 제가 그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제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과학에서 (넓은 의미의) 메타포 사용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순수한 여담입니다만, 전 가끔 인간의 사고를 컴퓨터가 아니라 생태계의 확장으로 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얼마만큼 멋진 숲일까요? 제 안에는 얼마나 다양한 물고기들과 산호가 자라고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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