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리터러시

 “(언어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에게) 같은 시설을 제공하고, 같은 교과서를 지급하며, 같은 교사를 배정하고, 같은 커리큘럼을 적용했다고 해서 평등하게 대했다고 볼 수 없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사실상 의미있는 교육의 가능성을 차단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1974년 미국 대법원 판결 내용 중에서 

이 판결이 나온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리터러시 편차는 엄청나다. “미국에 왔으면 모어를 버리고 영어를 쓰라!”고 윽박지르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다언어사회에서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리터러시 교육은 여전히 요원하다. 

외국어 교육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있다. 일례로 영어가 완전한 외국어인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선행학습을 가정하고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조기교육을 잘못된 가치관이나 욕심으로 몰아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국어교육이건 영어교육이건 리터러시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크게 세 가지 방향이 떠오른다. (1) 민주주의라는 공론장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자질로서의 리터러시 (2) 교육에서의 실질적 평등을 위한 최소요건으로서의 리터러시. (3) 기술의 발달과 환경적 변화를 고려한 다중리터러시(multiliteracies). 

리터러시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작업에는 전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언어정책을 입안하고 언어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연구와 실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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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요약본을 원한다.
이제 그들의 머리는
‘요약하는 사람들”이 점령한다.

장문을 피하는 것은
단순히 인내력의 문제가 아니며,
긴 글을 읽는 건
사회를 읽는 실천적 행위일지 모른다.

인간은, 세상사는 
언제까지나 복잡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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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 equality of treatment merely by providing students with the same facilities, textbooks, teachers, and curriculum; for students who do not understand English are effectively foreclosed from any meaningful education. Basic English skills are at the very core of what these public schools teach. Imposition of a requirement that, before a child can effectively participate in the educational program, he must already have acquired those basic skills is to make a mockery of public education. We know that those who do not understand English are certain to find their classroom experiences wholly incomprehensible and in no way meaningful.” [414 U.S. 563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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