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하는 사람, 편집이라는 행위, 그리고 역형성

Posted by on Mar 19,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편집자(Editor)가 있고 나서야 편집하는 행위(Edit)가 존재한다] 단어형성에 관한 설명을 할 때 사용되는 개념 중에 ‘역형성(back formation)’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어휘 형성의 반대 방향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많은 예들이 있지만 제게 큰 영감을 준 역형성의 예는 단연 Editor –> Edit 입니다.

말끔하게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문헌상으로 볼 때 ‘editor’라는 단어는 1640년대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edit”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편집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edit이 등장한 것은 1790년대. 즉, 사람을 가리키는 editor가 등장하고 15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edit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반적인 단어형성 패턴은 direct –> director, play –> player와 같습니다. 이러한 “동사–>행위자”의 방향이 직관적이죠. 하지만 editor의 경우는 ‘편집하는 사람(editor)’이 먼저 있었고, 이 단어를 본 사람들이 ‘흠 그럼 edit이라는 단어를 동사로 써도 되겠군’하고 잘못(혹은 논리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역형성이라고 불리는 것이고요.

이 역형성의 예는 한 가지 깨달음을 줍니다. 어떤 업(profession)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person)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 어떤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서야 특정한 종류의 일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일이 먼저 있었던 것 같지만 결국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건 사람이라는 것. 하필 그 사람이 ‘편집자’네요.

묵묵히 일하고 계신 이 땅의 수많은 편집자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밤입니다. 지금 제 옆에도 한 분 있군요. ^^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