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대로 가르친다 해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면…

Posted by on Mar 27,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영어 | No Comments

영문법 개론. 부정어(negatives)를 다루는 단원에서는 부정(negation)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들을 익힌다. 간혹 전통적 학교 문법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용법 또한 언급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영어(African American Vernacular English)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중부정의 사용(the use of double negatives)도 그중 하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이중부정을 사용한다는 것은 탄탄한 사회언어학적 자료로 뒷받침될 수 있는 사실이다.

이중부정에 대한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다음 수업의 수강생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그중 방문학생으로 온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 하나가 말을 건넨다. 이번 학기에 얼굴을 두어 번 보긴 했으나 인사하고 말을 섞는 건 처음이다. 5분 여 동안 대화가 이어졌는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네가 문법 가르칠 때, 흑인 커뮤니티(Black community)에서 이중부정이 사용된다고 가르친다는 게 사실이니? 나 아는 친구가 그렇게 말하던데.”

“응, 맞다. 왜?”

“진짜 그렇게 가르치나 궁금해서.”

“응, 그렇게 가르쳐. 전통적인 학교 문법에서는 이중부정을 비문법적이라고 가르지잖아.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쓴다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니까.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일부 지역 방언이나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중부정이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대중문화에서도 이중부정을 자주 찾아볼 수 있고. <Ain’t no mountains so high>나 <I can’t get no satisfaction>같이 유명한 히트곡들에도 이중부정이 쓰이잖아. 대략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어.”

“(조금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그러니까 흑인들 사이에서 이중부정이 사용된다고 하고, 그게 보통 학교문법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용법이라고 설명한다는 말이지?”

“(아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응. 용법은 각기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학교문법에서는 틀린 거라고 가르쳐.”

그제서야 왜 전혀 모르는 학생이 다가와 수업 내용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수업 내용 중 ‘흑인들이 이중부정을 쓰고, 이중부정은 비표준적 용법이다’라는 설명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 다시 말해, 흑인 커뮤니티에서 이중부정이 사용된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비표준적’이라고 전달되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던 거다.

이건 내가 ‘학교문법에서 ‘비표준적’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열등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언체계도 마찬가지다. 흔히 말하는 ‘사투리’가 열등한 체계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흑인영어 또한 그 자체로 완벽한 언어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을 한다 해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팩트(흑인영어에서의 이중부정 사용)가 권력(흑인영어의 각종 특징은 비표준적이다)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짧은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학교교육이라는 보수적 권력 체계 내에서 ‘비표준적’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고 언어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사회언어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비표준적’이라는 딱지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상처를 주기 마련이니까.

쉽지 않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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