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영어교육, 중학교 영어교육

Posted by on Mar 31,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영어 | One Comment

수업에서 나온 이야기.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선생님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영어를 그나마 하는 건 학교 영어 시간이 ‘노는 시간’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영어를 가지고 아이들과 즐겁게 놀려고 노력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기이니만큼 지속적으로 참여를 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획일화된 평가가 없으니 영어가 무섭거나 짜증나는 일이 적다.

중학교 진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급변한다. 영어와 빠이빠이하는 아이들이 급속히 증가하는 것이다. 놀이와 활동 위주의 영어수업은 사라지고, 학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공부량이 급증한다. ‘빽빽이(깜지)’를 숙제로 내주는 선생님도 생기고, 다이얼로그를 통째로 암기해야 하는 일도 많아진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여러 졸업생들에게 들었다던 이야기는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중학교에서 영어가 이렇게까지 재미없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영어가 죽을 만큼 싫어요.”

중학교 선생님 한분은 중간 기말 고사 대비를 위해 ‘재미없는 방식으로’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놔두었을 때 당장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진단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공부량은 많아지고, 수업은 지겨워지고, 학부모들의 기대는 높아지고, 선생님은 엄격해진다. 타과목의 부담도 같이 올라가니 영어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런 압력에 의연히 대처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그 가운데 일부 학부모들은 빡센 사교육이라는 무리수를 택한다.

한국의 영어교육과정은 상급학교로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학생들을 대거로 떨궈내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듯하다. 비단 영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1 Comment

  1. 조원식
    May 27, 2015

    안녕하세요.
    슬로우뉴스에서 선생님 글 보고 페북과 트위터 팔로우한지 한 달 정도 되는 것 같네요.
    저는 주로 중학과 고등학생 수업을 주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10년은 학원에서 10년은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어요. 게다가 편입수업하면서 대학생도 했고 초등학교에서 기간제로 수업도 해봤습니다. 별거 아닌데 이렇게 공사교육 갈마들면서 여러 연령대 수업을 하다 보니 특정 연령대 수업을 하시는 분들이 못 보는 걸 보게 되더군요. 물론 제 경험과 통찰이 선생님과 다른 분들 경험과 인식에 비해 우월할 것도 없지만 같이 얘기를 섞어볼 만 한 것 같아 정리해봅니다.

    1997년 초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도입한 이후 해당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중고등학교에서 영포자가 급증했습니다. 2010년 초등학교 영어시수가 2배 정도 늘어나면서 영포자가 5학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3/4학년 주당 1단위 5/6학년 주당 2단위 였습니다. 2010년 3/4학년이 주당 2단위로 수업량이 두 배 늘었고 2011년 5/6학년이 주당 3단위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교과서 간행 출판사의 초등 5/6학년과 중등 1/2학년의 영어교과서를 전량 조사했는데 4개 학년의 영어교과서 수준이 비슷했습니다. 애초에 초등 5/6학년에서 가르치던 영어는 놀이라는 당의를 입히기 좋은 색깔이나 과일, 숫자, 간단한 인사말이었는데 이 내용이 3/4학년으로 가버리고 나니까 5/6학년 영어는 결국 중등 1/2학년 수준이 된 거죠. 중학교 가서 포기하는 학생들은 사실 초등 5/6학년에 포기했지만 그냥 어른들 등살에 하는 척만 하던 경우가 많습니다. 중산층 주거지역이 아닌 대부분의 학교에 가면 5학년 2학기만 되어도 영포자가 보통 1/3 수준이 됩니다. 고등학교에서 수준별 수업을 해보면 같은 하반에 소속되었지만 중등 영포자와 초등 영포자는 시험점수가 비슷하여도 실력차이가 하늘 땅입니다. 디셈버라고 하면 초등 영포자는 잘 읽지도 못하고 들어도 그냥 영어려니 하지만 중등 영포자는 읽을 수 있고 그게 열 두 달 중 하나이고 대충 연말이나 겨울 이라고 알죠.

    중학교 영어는 외고 입시 때문에 망했습니다.
    중학교 영어교과서가 보통 10과~12과로 이뤄져 있으니 1년 4차례 시험을 보면 범위는 3년 내내 대체로 2.5~3과입니다. 시험범위 내용을 10포인트로 정리하면 A4용지 한 장 앞(뒤)에 들어갑니다. 통념에 비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적은 분량이죠. 실제로 중학교 수업을 해보면 하루 20분 수업에 한 달~ 한 달 반이면 시험범위 설명은 끝납니다. 활동 위주의 수업은 1학년 초반에 의미가 약간 있지만 이후에는 학생 참여도가 5%정도로 줄어듭니다. 5지선다형 시험과 수행평가가 절대적이니 인간이 영물인지라 다양한 활동으로 수업하는 걸 따라하는 학생은 한 반에 3명 넘지 않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교사는 다양한 활동을 포기하고 15분~20분 설명하고 깜지로 자습을 시키게 됩니다.
    시험범위가 교수내용과 의사소통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통과/보충필요의 2~3단계로 평가해도 무방하다 봅니다. 그런데 특목고 입시에서 교과성적 4%이내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보니 중간/기말고사에서 영어 고득점자가 4%가 초과되면 학교가 난리납니다. “내 아이가 특목고 떨어지면 당신이 애 인생 책임질거냐”는 항의가 정말 빗발치듯 들어옵니다. 예전 학력고사 영어처럼 용법을 묻는 문제가 필수불가결하죠. 특정 지역에선 빈약한 분량에서 바이링구얼 수준의 학생들 사이를 1등급과 2등급으로 나누려면 ‘다음 보기에서 같은 용법인 것을 모두 고르시오’ 등의 터무니없는 문제가 남발됩니다. 그러다보니 영어학원에선 용법 문제만 보통 이삼백 개를 풀어오도록 합니다. 시험범위는 한 장인데 용법문제만 50장을 풀고 있어요.
    대부분의 학생은 자신의 낮은 영어점수가 문법실력이 없어서라고 3년 내내 각인됩니다. 이 때문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방과후와 사교육에서 문법강좌가 아직도 수강생이 많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빡센 사교육이라는 무리수’는 영어실력과 하등의 관계없는 엉망진창에다가 시대착오적인 컨텐츠로 점철되어 있죠. 학년이 조금만 올라가면 결국 눈으로 5지선다형 문제푸는 것만 영어학습이라고 각인된 학생들은 스펠링도 잘 외우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아 의미파악은 되지만 입으로 손으로 나오지 않는 영어는 수업이 불가능합니다. 수능을 떠나서 보면 ‘살아있는 영어실력’의 대부분을 구성할 내용이 실제 수업에선 외면받게 되죠.

    여하간 말씀하신대로 영어는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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