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시기’라는 호명

Posted by on Apr 24, 2015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교육의 많은 문제는 학생들을 ‘학습자’라는 범주 안에 가두는 데서 발생한다. 그들은 학습자 이전에 생각하고 느끼고 배고프고 인정받고 싶고 졸립고 화나고 짜증나고 연애하고 싶고 드러눕고 싶은 인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바로 그 이유로 간과하기는 쉽고 견지하기는 어려운 관점이다. 학생들이 ‘배우기 위해’ 학교에 왔다고 전제하는 순간 교육은 바로 어그러진다.

. 세상을 알아간다는 건 범주화 능력의 발달을 의미한다. 나와 너, 산 것과 죽은 것, 액체와 고체와 기체, 성별, 국가, 정상과 비정상, 선행과 악행, 개인과 사회 등등을 구분하고 개념화하는 능력 말이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인지와 언어의 발달, 과학개념의 습득이다.

. 반대로 윤리적 측면에서의 발달은 이 모든 범주들을 ‘파괴하는’ 과정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과 여 그리고 트랜스젠더, 대한민국 사람과 외국인, 정치인과 일반 시민 등의 상위에 있는 하나의 개념, 즉 ‘인간’으로 이 모든 범주를 무력화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물론 ‘인간’을 넘는 개념화도 가능하다. 인간과 동물을 묶고, 인간과 동식물을 묶고, 생물과 미생물을 묶는 식으로의 확장 말이다.)

. 윤리적 힘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과과정은 ‘인식(awareness)’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너는 환경의식이 있니?’ ‘너는 인권의식이 있니?’

. 아이들에겐 감동적인 순수함도, 섬뜩한 사악함도 있다. 사회문화적 경험이 이 두 특성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며, 그 경험의 대부분은 기성세대에 의해 조직된다.

. 중1 교과서에서 사춘기는 여전히 ‘질풍노도의시기’로 이야기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10대 초중반을 그렇게 호명하는 건 늘 어른들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답안지에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써넣는 행위는 어떤 의미인가? 학생들이 기성세대를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는 기회는 왜 주어지지 않는가? 그런 기회를 준다면 지금 기성세대는 어떻게 호명될 것인가?

잡생각이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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