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목소리다

Posted by on May 29,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목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은 누군가의 의견을 듣는다는 뜻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말에 ‘의견을 요약해 달라’고 요구한다.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간단히 말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말은 종종 단순히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 ‘목소리’라는 단어 뜻 그대로 성대를 통해 흘러나오는 육성에 귀기울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전달하기도 한다.

메타포는 주로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을 심리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에 투사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차다’는 기온이 낮다는 물리적인 의미이지만 ‘(사람이) 차다’는 냉정한 성격을 말한다. ‘차오르다’는 물이나 기름 등의 액체가 용기에 담길 때 쓸 수 있는 표현이지만, ‘(마음이) 차오르다’라고 하면 벅참이나 만족, 행복감 등을 뜻한다.

메타포의 뿌리를 망각할 때 부유하는 개념과 추상 속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목소리(voice)’가 ‘의견(opinion)’으로 대치되는 순간 우리는 목소리의 물성(物性)을, 말하는 얼굴을, 그 한숨과 분노를 잊게 되는 것이다.

추상으로만 치닫는 언어는 몸과 마음을 갈라놓는다. 삶을 풍성하게 만들지 못하는 메타포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