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강의의 비효율성

한국 상황에서 영어강의에 반대하는 논리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교수자의 영어구사력 부족으로 전공지식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수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 영어로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걸 영어로 전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일리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교수자의 언어구사력’이라는 개념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업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과연 내용지식에 국한되는가? 물론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 교수자의 핵심 능력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교실에서 일어나는 대화에는 강좌 내용 뿐 아니라 분위기 형성을 위한 가벼운 이야기, 다양한 예시와 비유, 학생들과의 친분을 쌓기 위한 이야기, 개인적 경험 구술 등 다양한 대화 패턴 뿐 아니라 말장난과 농담, 순간적인 임기응변까지 포함된다. 바람직한 수업은 정해진 내용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교과를 매개로 삶을 나누는 공간이기에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어강의의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선생과 학생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이 교수자의 언어구사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교수가 유창한 영어로 강의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영어강의는 성공한 것인가? 겉으로 보기엔 그럴지 몰라도 수업 중 선생과 학생의 상호작용을 고려한다면 그렇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우선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한국어로 질문하는 것도 주저하는 학생들이 영어로 질문을 던질 리가 없다. 자기 생각을 길게 이야기하려면 큰 맘 먹고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맞서야 한다. 교수와 학생 혹은 학생들간의 토론의 질이 떨어질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수자의 언어구사력에 상관없이 교실 내 소통의 양적 질적 저하는 피하기 힘들다.

대학 외부 기관들은 평가를 무기로 대학의 ‘국제화’를 강요하며, 영어강의 비율은 ‘국제화’의 주요 평가 지표 중 하나다. 교수와 학생의 삶과 별 관련이 없는 기관들이 수업에서 무슨 언어를 써야 할 지를 정해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설령 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실제 수업 참여자들의 만족도 저하, 소통의 양적 질적 감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점에 대한 고려 없는 텅 빈 ‘국제화’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참으로 모순적인 것은 영어강의의 강제가 몇몇 평가기관이 그토록 부르짖는 ‘효율성’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효율성에 대한 얄팍하고 근시안적인 정의가 진짜 효율성을 죽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붙임: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가슴아픈 사례는 3시간 영어강의 후 20-30분 정도를 별도로 할애하여 한국어로 요약해 준다는 한 교수의 이야기였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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