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과의 대화 두 번째 만남 스케치

Posted by on Aug 3, 2015 in 강의노트, 삶을위한영어공부 | No Comments

1. 지난 주에는 예상보다 두 분이 더 오셨고, 오늘 또 두 분이 늘었다. 그리고 ‘어머니들과의 대화’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부부 동반으로 오신 분도 있었다.

2. 오늘은 어머니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 중에 “영어 읽기 발달”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읽기발달은 언어경험, 언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자각, 글자를 소리로 변환시키는 해독(decoding), 어휘발달, 문법발달, 지식의 증가, 시각적, 인지적, 정서적 활동의 어우러짐, 이 모든 요소의 상호작용 등이 관여하는 복잡다단하며 장기적인 과정이라는 것이 강의의 요지였다. 읽기에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인 매튜 이펙트, 부모와 교사의 정서적 지원과 아이의 자율성 인정 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명드렸다. 쉽지만은 않은 주제인데 열심히 듣고 적어주셔서 감사했다.

3. 어머니들이 제기하신 몇몇 질문을 통해 사고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들은 대부분 자녀가 지금 시기에 어떻게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지 궁금해한다. 특정한 가족환경, 특정한 사회경제적 상황, 특정한 교육 시스템, 특정한 성격, 특정한 나이, 특정한 목표 등을 전제로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질문은 굉장히 일반적인 답을 요한다. ‘그래서 아이 영어교육을 몇 살부터 시켜야 좋을까요?’ ‘그래서 파닉스를 하면서 반드시 한국어로 의미를 가르쳐야 할까요?’ ‘한국어 독서와 영어 독서의 비율은 얼마나 되어야 하나요?’

즉, 해결하려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처한 매우 특수한 상황인데, 그에 대한 질문은 ‘그래서 영어는 어떻게 시켜야 해요?’라는 추상적 형태를 띠고 있다.

4.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서 ‘정답’에 대한 목마름이 드러난다. 과연 영어는 어떻게 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 나는 가장 실망스런 답을 드렸다.

5. ‘정답은 없어요. 세상 아이들이 다 다르고 그 환경이 다 다른데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고 일련의 원리와 원칙이 있을 뿐이죠. 오늘 읽기 이야기를 했으니 책읽기 이야기를 좀 해보죠.

먼저 영어로 책을 읽을 때 영어로 읽는다고 해서 ‘영어로만’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사실은 영어로 책을 읽어도 우리의 지식체계와 경험 중에서 필요한 부분이 실시간으로 동원되거든요. 또 책을 읽는 것이 단어와 문법을 이해하는 수동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능동적인 활동이예요.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1) 먼저 ‘8월 초 어느 날이었다. 슬레이트로 지붕 간이 강의실에 들어섰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두 시간의 강의가 남아 있었다.’라는 문장을 보죠.

제가 쓴 문장이니 한국 상황이겠죠. 한국의 8월은 1년 중 가장 더운 달이구요. 8월의 슬레이트 지붕 강의실은 찜통입니다. 사실 제가 저 위에서 한국의 8월 날씨에 대해, 슬레이트라는 재료의 성질에 대해 이야기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이 정보들이 자동으로 활성화되죠. 이전 텍스트 중에서 적절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동원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두 시간의 강의가 남았다’는 문장이 들어오면 단지 글의 의미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상황 전체가 눈에 그려져요. ‘멘붕이겠다’라고 화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겠죠.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문자로 전달되지 않은 의미라 하더라도, 우리의 지식과 경험 중에서 필요한 정보가 자동으로 동원된다는 사실입니다. 영어 읽기건 한국어 읽기건 이런 과정이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2) 예전에 한 샌드위치 가게 벽면에서 이 글을 봤습니다.

“Never be afraid to try something new. Remember that a lone amateur built the Ark. A large group of professionals built the Titanic. (새로운 시도를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기억해야 할 것은 아마추어 하나가 노아의 방주를 지었지만 많은 프로들이 달라붙어서 타이타닉 호를 주조했다는 사실이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믿건 안믿고는 중요한 게 아니고요. 이 문장을 읽고 올바른 의미를 이끌어내려면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타이타닉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해요. 노아의 방주는 세상을 구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초호화 유람선은 침몰하고 말았죠.

이렇게 배경에 깔린 이야기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 문장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는데, 이건 영어와 한국어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한국어 독서냐 영어 독서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죠.

이렇게 보면 영어로 글을 읽을 때라도 ‘영어로만’ 읽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3) 요즘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이 히트를 하고 있는데요. 발달심리학자가 본 <인사이드 아웃>과 일반인들이 본 <인사이드 아웃>, 평범한 7세 아이가 본 <인사이드 아웃>은 과연 같은 애니메이션일까요?

이들이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오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행간을 읽어내는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행간읽기’는 보통 ‘reading between the lines’라고 표현되는데요. 글쓴이가 이야기한 것 이외에 다른 정보들을 이끌어내는 걸 말하는 거죠.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행간읽기’는 ‘행간쓰기’ 즉, ‘writing between the lines’라고 해야 옳습니다. 진정한 독서는 저자가 이야기한 것을 ‘알아내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관점과 경험, 지식을 동원하여 빈 칸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깊이 있는 독서를 ‘reading between the lines’가 아니라 ‘writing between the lines’라고 표현합니다. 행간 쓰기는 흔히 말하는 ‘비판적 문해력(critical literacy)’의 기반이 되죠.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펜을 들고 쓰지 않는다 뿐이지 매우 능동적인 쓰기 과정입니다.

(4)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어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는 것이 빠를까요 영어를 통해 쌓는 것이 빠를까요? 답은 자명하겠죠?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영어책을 잘 읽어야 하니 영어로만 책을 읽혀야 한다는 주장은 과학적이지 못하죠. 영어책은 ‘영어’책이기면서 동시에 ‘책’입니다. 영어를 해야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단순한 해석만으로 깊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책의 비중은 점점 높아지죠.

6.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하면 좋은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어보다 중요한 게 세상에 진짜 많아요.”

“아이가 공부를 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과도하게 비교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역할이 절대적이예요. 파닉스 좀 못한다, 독해 좀 안된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이 없어야 될 것 같아요. 비교를 안하고 사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비교를 좀 덜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 방향을 조금 트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답은 없지만 지켜야 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이들을 내몰지 않고 대화를 통해 공부하도록 하는 것, 그런 과정을 차곡 차곡 쌓아 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주체로 커가는 것. 그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도 아이도 행복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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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떠들고 쨍한 빛으로 나오니
하늘빛이 노오랗구나.

1회 모임으로 예정되었던 만남.
다다음 주에 한 번 더 뵙기로 했다.
그땐 내가 좀더 많이 듣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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