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 단상

Posted by on Aug 30, 2015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Kierkegaard was by far the most profound thinker of the last century. Kierkegaard was a saint. – Ludwig Wittgenstein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나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The thing is to find a truth which is true for me, to find the idea for which I can live and die.) —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1835년 8월 1일)

“덴마크에서 오직 죽은 사람만이 상황을 지배한다. 부도덕함, 질투, 뒷담화, 평범함은 모든 최고의 공간에 존재한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의 삶이 남긴 결과는 비범한 것이 될 것이다. 일기들에서 부주의하게 간단히 몇 자 적어둔 많은 것이, 매우 큰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와 화해하게 될 것이고, 나를 인정할 수도 있고 내가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10] (1849년 12월)

키에르케고르,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지만 언젠가는 꼭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한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이다.

1. 키에르케고르는 많은 작품을 익명으로 남겼으며, 그가 익명으로 쓴 작품을 비판하는 또 다른 익명의 작품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2.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죄와 아버지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죄와의 관계를 보아 왔기 때문에 키르케고르는 여러 작품에 그 경험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키르케고르의 아버지는 때때로 종교적인 우울증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키르케고르와의 관계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이었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놀면서 상상력을 키워 나갔다. 키르케고르의 아버지는 82세의 나이로 1838년 8월 9일에 사망하였다. 그는 죽기 전에, 쇠렌 키르케고르에게 개신교 목사가 될 것이냐고 물었다. 쇠렌은 아버지의 종교적인 경험과 삶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버지의 바람에 충실히 따라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이틀이 지나고, 8월 11일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의 아버지는 수요일에 돌아가셨다. 나는 정말로 그분이 몇 해라도 좀 더 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죽음이 그분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 바치는 최후의 희생제사인 듯이 지켜보았다. …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은 내가 조용히 무엇인가로 변화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죽었을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고, 나는 그분의 모든 것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합쳐진 존재이고, 나는 그를 쏙 빼닮아 약간 변형된 그의 초상화처럼 보인다. …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내가 신중하게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그의 기억을 안전하게 숨겨서 보호하는 일이다.”

3. 그는 일기장에 (이후 파혼에 이르게 되는) 올젠을 향한 사랑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그대, 가슴 한복판에 있는 나의 요새에 깊숙이 숨겨둔 내 마음을 장악한 주권자, 내 생각의 충만함, 그곳 … 알 수 없는 신성! 오, 내가 시인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누군가 처음 사랑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는 그녀를 오래 전에 본 적이 있었다고 상상하리라, 모든 기억과 같은 모든 사랑은 기억이다, 그 사랑은 한 사람에게 그 자체로 충분히 예언들과 같은 힘을 지닌다. … 그대는 나에게 그대와 같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가 모든 소녀의 아름다움을 소유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는 나의 텅 빈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온 세계를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내 존재 전체가 지니고 있는 깊은 신비가 가리키는, 그곳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에 그대가 나에게로 왔다. 나의 영혼은 가득 찼고, 그것은 너무도 강력해서 나는 내 자신을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켰고, 나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2월 2일 1839년)

4. 키르케고르가 쓴 책의 절반가량이, 그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나타내기 위해 창조한 여러 익명 인물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키르케고르의 간접적 의사전달 방식을 보여 준다.

“저자로서 나의 저서에 대한 관점”과 같이, 그의 책과 일기 중 여러 부분에서,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서가 체계적인 구조를 갖춘 철학적 체계로 취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글을 썼다.

“익명의 저서들에서, 내 것은 단 하나의 단어도 없다. 나는 마치 제삼자의 입장인 것처럼 그 저서들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고, 그들의 의미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독자로서 읽었을 뿐, 익명 저자들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사적 관계조차 맺지 않았다.”

— 쇠렌 키르케고르, 《관점》

키르케고르가 간접적인 의사전달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자신이 쓴 글이 어떤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지 간에, 그것을 독자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가 그의 삶에 어떤 부분이 글에 반영되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글의 표면적인 의미만 간단히 읽어내기를 원했다. 키르케고르는 또한 그의 독자가 그의 사상을 권위적인 체계로 여기지 않기를 원했고, 그런 식으로 신봉하기보다는 차라리 독자 자신의 해석으로 자신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C%87%A0%EB%A0%8C_%ED%82%A4%EB%A5%B4%EC%BC%80%EA%B3%A0%EB%A5%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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