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나

Posted by on Sep 30, 2015 in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말이 변한 만큼 나도 변했다.

세월의 흐름에 단어간의 거리가 조정된다. 소소한 것들과 시시한 것들은 가까와졌다. 대단한 것들과 시시한 것들의 간극도 많이 줄었다. 선과 악 사이의 망망대해는 가느다란 실개천이,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이 되어버렸다. 개인과 사회는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되어 있다. 개인을 까뒤집으면 사회가 나온다.

모순형용은 모순적이지 않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왜 모순적인지, ‘소리없는 아우성’이 왜 시적 허용인지 알 수 없다. 슬픔이 찬란하지 않다면 도대체 뭐가 찬란한 것인가? 피끓는 아우성은 좀처럼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별까지도 사랑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사랑에 실패한 ‘루저’의 한탄만은 아니라고 느낀다.

어떤 단어는 변신 신공을 보인다. “국가”는 음험하고 어두운 느낌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지 오래고, “동네”는 “냥이들”과 떼어낼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음악”은 열정과 기쁨에서 처절한 그리움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단어다. 아 합주하고 싶구나.

여전히 ‘오롯이’를 ‘시리게’ 사랑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는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친구”가 무엇인지 논하려 들지 않으며, “인생은 OO”라는 명제는 정의라기 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똥고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변한 만큼 말도 변했을 거다. 짧지만은 않은 세월 나와 같이해 준 말들아, 고맙구나.

아 내려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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