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사육이 되는 세계

Posted by on Oct 20, 2015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급진적 다양성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두 가지 모두를 포용하지 않는 교육은 획일화되거나 도구로 전락한다. ‘적당한 다양성’과 ‘개략적 이해’는 종종 반교육적 성격을 띤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교육의 평등성이 확보되고, 인간과 사회의 ‘밑바닥’에 대한 성역 없는 탐구에서 교육의 수월성이 성취된다는 점이다.

평등과 수월성의 달성 여부는 교과내용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교과내용과 삶을 연결시키고 이들 사이의 균열을 감지하며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달려 있다.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무엇을 알기 원하는가”를 넘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질문의 내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생성되고 삶과 부딪칠 때라야 (부분적으로) 대답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교육은 정적으로 보이는 지식의 체계가 만남을 통해 동적인 질문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이는 전통적인 교육의 개념–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교사와 학교가 채워주는 모델–을 뒤집는다. 교육의 목표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함께 던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데 있다.

기껏해야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제대로 된 질문이라 할 수 없다. 답이 하나인 세계라면 질문의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다. 그렇게 닫혀진 세계에서 교육은 사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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