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상대평가를 고집하는가: ‘반(反)당사자 정책’의 문제에 관하여

Posted by on Oct 27, 2015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매우 단순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려 한다. 누가 상대평가를 고집하는가? 주변의 교수와 학생들 중 상대평가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상대평가에 대한 이론적 관점이나 개개인의 경험 및 태도가 조금씩 다를지는 모르나, 적어도 나의 지인들 중에서 현재의 상대평가제를 옹호하는 사람은 전무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라 교육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이 수업과 평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교수학습 당사자가 아닌 다른 이들의 입맛에 맞는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예외적’이라고 한다면 위 주장은 그릇된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하지만 한 평범한 강사가 무작위로 만난 교수와 학생 모두가 ‘극단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참고로 고려대는 이번 학기부터 상대평가제 폐지 실험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긴 이런 ‘반당사자 정책’이 어디 상대평가제 뿐이랴.

노동자들이 원하지 않는 노동 정책, 역사가들이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여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성 정책… 생각해 보면 당사자들의 이해와 완전히 반대되는 구조적 힘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많은 언론과 기업들은 이러한 ‘외부적 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사회적인 홍보, 교육,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한다. 이들은 점차 ‘세련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비슷하다. 당사자들의 소통과 연대를 막고, 그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어디에 서 있든지 당사자의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선생은 정부가 아니라 가르치는 주체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 말이다. 그렇게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합의하고 실행하기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교육이, 언론이,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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