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

“날씨가 추워졌네요.”
“네네. 완전 추워요.”
“건강 조심하구… 오늘은 날씨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날씨 중에서 비유적인 표현. 비온다, 눈온다 그런 거 말고요. 날씨랑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지만 다른 뜻으로 많이 쓰이는 것들요.”
“네네.”
“혹시 break the ice 라는 말 들어봤어요?”
“…”
“무슨 뜻일까요?”
“얼음… 깨다?”
“그렇죠. 단어 그대로 하면.”
“얼음이니까… 추운 걸 깨다? 따뜻하게 하다?”
“아 그럴 듯 한데 그런 뜻은 아니고요.”
“…”
“이게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서먹서먹하잖아요. 분위기도 어색하고. 그럴 때 분위기를 ice 그러니까 얼음으로 표현한 거예요. 어떨 때는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고도 하잖아요.”
“아…”
“그래서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깬다는 의미예요. 보통 농담을 던지거나 재미있게 자신을 소개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아…”
“저도 학생들 처음 만나면 가끔 break the ice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초롱초롱)”
“처음 학생들 만나면 제 이름을 칠판에 쓴 다음에 ‘보시다시피 제가 이름이 성우인데, 목소리는 그다지 아름답진 않아요.”
“……”
“(급 수습모드)그렇죠. 바로 이런 식으로 break the ice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 한 80퍼센트는 ‘뭐지?’하는 반응, 20퍼센트는 좀 웃는 거 같아요.”
“(계속 멀뚱멀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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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다음은 the calm before the storm이예요. 따라해 보세요. The calm before the storm.”
“The calm before the storm.”
“calm하다면 어떤 뜻일까요?”
“조용하다?”
“맞아요. 조용하다. 차분하다. 평화롭다 그런 뜻이죠. Storm은 많이 들어봤죠?”
“태풍….?”
“태풍이라는 뜻도 되고, 일반적인 폭풍도 되고요. 비바람 심하게 부는 거.”
“네.”
“근데 비바람, 폭풍 불기 전에 조용한 거니까…”
“아 대충 뭔지 알겠어요.”
“그렇죠? 살면서 이럴 때 있잖아요. 예를 들면 사회 과목 선생님이 ‘너희 반 지난 번에 1등 했는데 이번에는 평균이 꼴찌야’라고 말했는데, 담임 선생님은 아직 그 소식 모르고 평소처럼 이야기할 때.”
“ㅋㅋㅋ 저희 반 정말 그런 적 있는데. ㅎㅎㅎ”
“아 정말요? 1등에서 꼴찌로?”
“네네. 한 번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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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chase rainbows예요. Chase 들어봤어요?”
“아뇨? 처음 듣는데요.”
“Chase. C-H-A-S-E. Chase. 추적하다, 따라가다, 좇다. 그런 뜻이죠. 따라해 보세요. Chase.”
“Chase.”
“Chase.”
“Chase.”
“그런데 무지개를 따라간다고 하면 무슨 뜻일까요?”
“…”
“무지개가 손에 잡힐 것 같아도, 정말 손으로 만질 수가 있나요?”
“아뇨.”
“뭔가 있어 보이지만 절대 붙잡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쵸…”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
“친구들 중에 그런 애들 좀 있어요.”
“그래요? ㅎㅎ”
“네.”
“진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암튼 친구가 절대 불가능한 일을 자꾸 하려고 들면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You’re chasing rainbows.’ 자 따라해 보세요. ‘You’re chasing rainbows.'”
“You’re chasing rainb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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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좀 재미있는 표현이예요. A fair-weather friend. 따라해 보세요. A fair-weather friend.”
“A fair-weather friend.”
“자 fair, F-A-I-R 페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죠?”
“페어플레이?”
“맞아요. 페어플레이. 무슨 뜻이죠?”
“반칙 안하는 거.”
“그렇죠. Fair는 경기에 쓰면 공정한, 정정당당한 같은 뜻이예요. 그래서 fair play는 공정한 플레이죠. 그런데 이게 날씨랑 같이 쓰이면…?”
“…”
“날씨가 좋은 걸 말할까요? 나쁜 걸 말할까요?”
“좋은 거요.”
“맞아요. 좋은 날씨. 화창한 날씨. 보통 너무 춥지도 않고 비도 안오는 날씨를 말해요. 그럼 ‘a fair-weather friend’는 뭘까요?”
“성격이 밝은 친구? 성격 좋은 친구?”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근데 아니예요.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예요.”
“(살짝 풀죽은 듯 표정)”
“이게 ‘좋은 날씨 친구’잖아요?”
“네. ㅎㅎㅎ”
“근데 좋은 날씨에만 친구면 좋은 친군가?”
“아뇨.”
“그쵸. 좋은 친구는 좋은 날씨에도 친구, 나쁜 날씨에도 친구여야 좋은 친구잖아요?”
“네.”
“그런데 이 친구는 ‘좋은 날씨에만 친구야.”
“아…”
“그러니까 나쁜 날씨 되면…”
“모른척해.”
“네. 모른척 할 수도 있고,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잠수타기.”
“ㅎㅎㅎ 네네. 그런 친구 안좋죠. 맛있는 거 사주고 좋은 일 있을 때만 친구였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 생기면 아예 안보이는 친구. 그런 친구는 사실 진짜 친구는 아닌 거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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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잘 모르는 단어일 거 같아요. 따라해 보세요. (쓰면서) breeze.”
“Breeze.”
“Breeze.”
“Breeze.”
“이게 산들바람, 봄이나 가을에 기분 좋게 부는 바람이라는 뜻이예요.”
“네.”
“근데 이게 살랑 살랑 부는 바람이라서 설렁 설렁 해도 쉽게 끝나는 일을 이야기할 때도 쓰여요.”
“ㅎㅎ 네.”
“그니까 쉬운 일을 말하는 거죠. OO씨는 그림 그릴 때 뭐가 제일 쉬워요? 사람 그릴 때 그래도 젤 쉬운 게 어디예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쉬운 게 없어요.”
“어… 하나도 없어요?”
“(단호+체념) 한 개도 없어요.”
“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 Nothing is a breeze for me. 자 따라해 보세요. Nothing is a breeze for me.”
“Nothing is a breeze for me.”
“나한테는 쉬운게 없어.”
“진짜 없어요.”
“좀 슬프다…. 그럼 이거랑 연관 표현 하나 배우고 마칠게요. 날씨는 아니지만 쉽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
“네.”
“우리말에서는 진짜 쉬운 일을 누워서…”
“떡먹기.”
“그쵸. 누워서 떡먹기라고 하죠. 진짜 쉬운 일이라는 뜻. 근데 누워서 떡먹으면 안되는 거 아시죠? 가끔 떡이 기도를 막기도 한대요. 일어나서 잘 씹어 드세요.”
“네네.”
“근데 영어에서도 먹을 걸로 ‘쉽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 혹시 뭘로 하는지 알아요?”
“…”
“몰라요?”
“…”
“A piece of cake.”
“아…”
“한 조각의 케잌이라는 뜻인데… 무척 쉽다는 뜻이예요.”
“네.”
“요리 중에서 뭘 젤 잘해요? 쉽게 해요?”
“라면? ㅎ”
“ㅎㅎㅎ 라면을 요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저도 라면을 젤 잘 끓이는 거 같아요.”
“ㅎ 워낙 예전부터 하던 거라서 쉽죠.”
“맞아요. 라면이 제일 쉽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겠죠. Cooking Ramen is a piece of cake. 따라해 보세요. Cooking Ramen is a piece of cake.”
“Cooking Ramen is a piece of c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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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쉬운 게 어디있을까.
아이들의 삶도, 내 삶도 a breeze는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날.

유치원생의 일기처럼
‘Fair-weather friend’는 되지 말아야겠는 다짐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Yes, I know.
Nothing is a breeze for us.
But let us not be fair-weather friends to each other.

 

 

그러자 생각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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