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즌포(Citizenfour)를 보고

Posted by on Feb 26, 2016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마음이 잡히지 않아 전에 보려다 놓친 <씨티즌포>를 봤다. 에드워드 스노든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내부고발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예상은 틀렸다. <시티즌포>는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한 내부고발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팀과 시스템, 특히 언론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다큐 시작에서 엔딩 크레딧까지 숨을 죽이며 봤다. NSA의 광범위하고도 무차별적인 정보수집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세계 누구의 통신기록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 들여다 볼 수가 있다. 인터넷 전화는 통화중이 아니더라도 감청이 가능하다. 드론을 띄워 ‘요주의 인물’들을 감시하는 것도 다반사다. 미 정보국은 이미 전세계를 자신의 판옵티콘으로 만들어 버렸다.

숨막히는 감시 시스템이 가져올 재앙을 감지한 스노든은 일생을 건 내부고발을 준비한다. 오랜 시간 치밀한 준비를 통해 기밀문서를 빼내고, 믿을만한 언론인들과의 접선 채널을 확보한 후, 비교적 안전한 홍콩으로 날아간다. 본 다큐의 감독인 로라 포이트라스, 가디언의 저널리스트 글랜 그린월드 등을 통해 NSA의 무차별적 정보수집이 세상에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아산지 등이 스노든의 안전을 위해 연대한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이 사건을 큰 비중으로 다룬다.

많은 이들이 스노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무기징역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스노든 자신이 이 모든 사태를 예상했다. 자신이 내부고발을 감행하는 순간 가족과의 연결고리는 모두 끊어지고, 범죄자 신분으로 쫓기는 신세가 될 것임을.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부를 건다’는 말이 그에게는 메타포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강한 확신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설마하는 일들이 매 순간 벌어지고 있고, 프라이버시가 사라진 사회에서 자유란 빈 껍데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게 목숨을 걸만한 일이라는 확신. 또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고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인들과 함께했다. 로라 포이트라스와 글랜 그린월드는 이 결단에 화답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모든 것을 걸었다.

스노든의 용기가 세계를 바꾸었는가? NSA는 여전히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스노든은 ‘반역자’ 딱지를 붙이고 쫓기는 신세다. <시티즌포>가 오스카 상을 거머쥐었지만, 감시망은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하지만 스노든은 제2, 제3의 스노든의 가능성이 되었다. 다큐의 마지막 장면은 이것이 막연한 바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세상 따위는 없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도 명확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스노든이나 그린월드, 포이트라스와 같은 이들의 행동은 소중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스노든이 세상을 바꾸었는가?”가 아니라 “스노든의 용기있는 행동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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