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밥먹기

Posted by on Feb 27,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학기 초, 시스템상의 정원이 차면 더 이상 수강신청을 할 수 없다. 이 경우 담당 강사가 동의하면 수강이 가능한데, 이때’수강신청 초안지’라고 불리는 서류가 필요하다. 보통 줄여서 ‘초안지’라고 한다.

이번 학기 시스템이 강의 정원을 유난히 작게 잡아놔서 몇몇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들을 수 있느냐는 문의를 해왔다. 그런데 두 메일의 제목이 ‘초안지 관련 (문의)’다. 내용은 내 수업을 듣고 싶은데 강의 정원이 차서 들을 수 없으니 (수강신청) 초안지에 서명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변변찮은 수업을 듣겠다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솔직히 말하면 정원미달 폐강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무엇보다 내가 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 많이 기댄다. 수업때문에 정신없기도 하지만 수업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초안지 관련”이라는 제목을 보며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과제를 제외하면 강사와 학생 사이의 메일이 그리 잦진 않은데, 내용은 행정적, 관료적 절차에 집중된다. ‘초안지 문의’, 마감일자 문의 및 연장요청’, ‘성적 산출 기준’, ‘성적 변경 가능 여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 학기 강의가 좀 줄었다. 그래봐야 빡빡한 일상은 여전하겠지만, 늘어난 시간에 ‘관료화된 질의응답’을 ‘함께 배우는 사람들의 소통’으로 바꿀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해 봐야겠다. 가끔 ‘학생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면 더 힘들 수 있다’고 충고해 주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너무 가까와져서 문제가 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무엇보다 학생들이랑 밥을 자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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