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로서의 호칭

Posted by on Feb 28,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헬조선’이라는 말이 여기 저기에서 들려온다면 응당 ‘헬조선’과 싸워야 한다. ‘왜 헬조선이라는 말을 쓰니?’라든가 ‘넌 헬인지 모르겠지만 난 아닌데?’라고 응수하는 건 현상의 근본을 회피하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변에서 ‘개독’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면 ‘개독’과 싸우면 된다. ‘세상에 양심적인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항변은 ‘개독’으로 표현되는 집단의 안위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무시할 수 없는 담론이 된 호칭들은 시대적 징후(symptom)다. 징후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표면화된 것이다. 무엇보다 명명에 대한 논쟁은 본질에 천착할 때에만 유효하다. 불이 난 상황에서 ‘불이야!’가 아니라 ‘화재가 발생했으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가 적절한 표현이라는 주장은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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