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쓰기 수업 복기

1. 영어논문을 많이 읽으면 영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영어논문을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우리말로 된 소설 많이 읽으면 소설가가 될 수 있나? 우리말 뉴스 많이 보면 뉴스 스크립트 잘 쓸 수 있나? 모국어가 이럴진대 외국어로 글을 쓰는 건 어떻겠나?

2. 영어로 논문쓰기에 대한 또 하나의 큰 오해는 “읽기는 무리가 없는데 쓰기가 너무 안되네요”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텍스트의 입력과 출력이 전혀 다른 인지적 과정을 수반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논문읽기는 기본적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논문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이 일종의 정신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으로 남는다. 논문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어떤 단어, 연어, 메타포가 쓰였는지, 어떤 문형이 어떤 순서로 동원되었는지 기억하진 못한다. 비유를 들자면 이해를 위한 읽기는 ‘요리 재료와 요리 과정에 관심이 없다. 최종적인 요리의 종류와 인상적인 특징을 이미지로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쓰기는 단어를 하나 하나 배열하며, 효과적인 문법 구조를 의도적으로 동원하는 과정이다. 내용을 아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단어와 문법 구조를 선택하는 언어집약적 산출 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1) 이미 완성된 저자의 언어에 기반하여 나의 머릿속에 내용을 구축하는 일과 (2)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생각을 기반으로 텍스트를 써내려 가는 일은 전혀 다른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읽기와 쓰기를 전략적으로 연계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3. 논문작성은 연구실적을 쌓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저자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저작에 대해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또한 저작의 과정 자체가 해당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논문쓰기가 고되고 지루한 작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자 또 전문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졸업 요건의 충족’이나 ‘실적 달성’에서 ‘저자-되기’, ‘전문가-되기’라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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