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내 저자표기에 대한 단상

Posted by on Mar 27,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조금 오래 된 이야기지만…

논문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논문 텍스트 속 저자의 이름과 연도의 표기였다. 예를 들면 APA 스타일에서 김개똥(2016), Smith(2011) 같은 본문 내 저작 표기다.

여기에서 ‘김개똥(2011)’은 ‘김개똥이라는 사람이 2011년도에 쓴 논문’을 가리킨다. 재미난 것은 이 표기가 김개똥이라는 인격체와는 관련없이 텍스트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일련의 아이디어, 실험, 분석, 주장, 제안을 담은 한 편의 글로 기능할 뿐 작가와 직접적 관련은 없다. 예를 들어 설사 김개똥씨가 필자의 아버지라 하더라도 “김개똥(2011)씨는 …라고 주장하셨습니다”라고 존칭을 쓸 일이 없다. “존경하는 OOO교수는…” 같은 문구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김개똥(2016)이 글쓴이가 아니라 텍스트라는 사실은 과학이라는 공론장에서 중대한 무게를 갖는다. 과학담론의 전개에서 계급은 없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글쓴이의 사회문화적, 경제적, 인종적, 정치적 배경을 일체 고려하지 않고 논문의 아이디어만으로 학문적 대화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라는 말이다. (과학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는 나이브한 주장일지 모르지만, 과학이 ‘계급장 뗀 논쟁’을 이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런 면을 보지 못했던 나는 이른바 ‘빅네임’의 논문만 나오면 기가 죽었다. 허점없는 논문은 없고, 설사 거의 완벽에 가까운 논문이라 해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시비걸’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명한 저자를 인용할 때는 보이지 않게 “대가”를 붙였고, 듣도 보도 못한 저자의 글 앞에서는 불성실한 독자가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공부가 뭔지 몰랐다.

담론의 장에서 계급장은 없다. 다른 이들의 논문을 가벼이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주장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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