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고 키우는 마음으로

Posted by on Apr 12,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며칠 전 서울의 한 대학교 1학년 교실. <미생> 이야기를 꺼냈는데 단 한 명도 아는 이가 없다. 당연히 윤태호도 알 리가 없다. <이끼> 이야기를 했더니 열 다섯 중에 두 명이 안단다. 오늘은 “furious”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Fast & Furious> 영화 이야기를 했다. 단 한 명도 모른다. 들어본 적도 없단다.

2년 전 중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알 것’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사실 <미생>의 예를 들려고 한 것도 학생들 중 몇 명은 알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빗나갔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니 1학년 학생들은 대중문화의 영향에서 철저히 차단된 채 살아가다가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아직 다양한 문화적 경험에 ‘오염되지 않은(?)’ 집단인 거다. (그래도 내가 ‘윤태호는 꽤 유명한 만화가다’고 말했을 때 위로의 끄덕임이라도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 차가운 눈빛들이란 ㅠㅠ)

그런 학생들이 대학 내내 성적관리와 스펙쌓기, 취업준비에 골몰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정치적 상상력을 키우고 시대에 저항할만한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공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심도 없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기 바쁜’ 모습이 관찰되는 것은 당연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렇게 숨막히는 판을 짜놓은 사람들이 호통을 친다는 거다. 남들 다 보는 드라마 한 편, 십년 가까이 이어져 온 영화 시리즈 하나 감상할 여유 없이 헉헉대며 살아오다가 이제 겨우 세상에 발딛는 이들에게 ‘세상이 이모양 이꼴 될 때까지 뭘 했냐’고 윽박지르는 건 땅속에서 막 움튼 새싹에다 대고 ‘넌 왜 여지껏 열매 하나 없냐’ 꾸짖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제대로 소리 지르면 할 일은 다 한 거라 위안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리지른다고 새싹이 나무되고 열매가 맺히진 않는다. 빛과 물과 거름이, 무엇보다 정성어린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청년들 만이 아니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내일
돌보고 키우는 마음으로
신중히 투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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