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리고 시간

Posted by on Apr 14,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시계는 돕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이후 가족과 친구를 잃은 유가족들 앞에서 시간은 멈추었습니다. 슬픔과 고통, 분노와 울부짖음만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그래도 내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상처입은 자들을 겁주고 저주했습니다. 잊지 않겠다 다짐했던 저도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곤 합니다.

아래는 2014년에 쓴 글입니다. 해결된 것 하나 없이 비정한 시간만 흘러갑니다. ‘시간만 흘러간다’고 말했지만 이 사회가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그리고 그만큼 무거운 살아남은 이들의 삶을 망각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아프고 화납니다.

그렇게 고운 사람들을 보낸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서로의 기억이 되어 다시는 이런 슬픔을 겪지 않도록, 이 야만의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도록…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전성원(Jeon Sung Won)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따로 지정을 하진 않겠지만 많은 친구분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목소리를 공유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결국 모든 기억은 내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

수많은 이들이 죽었어요. 뉴스를 열심히 봤는데 정확히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배 안에서 고통스럽게 죽은 거 하나는 확실한데… 왜 아무도 구조해 주지 않았는지, 구조되었다는 거짓말은 왜 나왔는지, 배는 왜 그따위로 규정을 어기고도 출발했는지, 그냥 승무원들과 선장이 이상한 사람들이어서 그런 건지, 멀쩡히 전기가 들어오는데 CCTV는 왜 일제히 모두 꺼졌는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에 왜 아무 일 안하고 놓친 건지. 보고체계의 혼선은 왜 그렇게 잦았는지. 정부기관 내에서 과장과 조작이 왜 비일비재한 건지. 대통령의 ‘구명조끼’ 발언으로 봐서는 정부 발표처럼 보고를 제대로 받은 건지 의심도 되고. 사실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요.

솔직히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고치고 넘어가야 할 게 많아요. 예전 인명 참사 때 아픔을 겪으셨던 분들도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하고,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문화제로, 서명으로, 집회로, 팽목항에서의 봉사로,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기도로 유가족들을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예술계, 언론계, 학계, 대학생, 중고생 등등 너나 할 것 없이 힘을 보태 주셨죠. 유가족이 원하는 기소권, 수사권 보장하는 특별법이 무리라고 하는 분들도 있던데, 엄청 많은 법학자들이랑 변호사들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더라고요. 350만이 넘는 사람들이 특별법 지지 서명을 했는데 대단한 숫자 아닌가요?

그런데 이런 거 백여 일 지나면 잊어버려야 되는 거라고 다 그러던데요? 아 ‘다’는 아니고 상당수 정치인들이요. 여당 일각에서는 ‘유가족에게 더 양보할 수 없다’는 말도 나왔다던데, 뭘 줬길래 더 양보할 수 없다고 하는 건지, 지금 상황에서 여당이 유가족에게 ‘양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도 모르겠어요. 대통령도 자기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하고, 여야는 자기들끼리 합의한 대로 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하고, 국민들도 곧 다 자연스럽게 잊을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하긴 대통령이 유가족 뜻대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도 많이들 잊었죠. 총리도 책임사퇴 한다더니 다시 돌아가서 일하고 있고, 해경 해체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 같고. 유 아무개가 죽었을 때는 사건이 다 해결된 것처럼 언론에서 난리를 쳤죠.

요즘엔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조용히 잊고 넘어가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할 거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리네요. 정치인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많은 언론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더군요. 특히 거대 언론사들이 이런 주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생각 하면 한국전쟁도 잊고, 일제시대도 잊고, 친일반역행위도 잊고, 정권들의 비리도 다 잊어야죠. 다 잊고 희망찬 미래로 가야죠.

정말 화나는 건 엄정한 수사와 기소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에 대한 반감을 키워가는 개인들과 단체예요. 급기야 일부 사람들은 유가족의 사생활까지 파고들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어요. 하긴 국가기관이 유가족을 미행하고 감시해 왔죠. 휴… 형식적으로나마 헌법 위에 기초한 국가가 시민을 우습게 아는데, 개인의 감정과 이익에 충실한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리가요… 그래서 유가족들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분들 보면 깊은 존경과 감사를 느껴요. 그리고 죄송해요.

생각해 보면요. 잊을 게 따로 있고, 묻을 게 따로 있는 거 같아요. 자식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는데, 남들이 설명하는 건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는데, 이후 이런 사고가 또 일어나면 이 지옥같은 시간이 다시 반복될텐데 어떻게 이걸 잊고 묻어요. 조상 한 분이 돌아가셔도 매년 기리잖아요.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도 잊히질 않잖아요. 의문의 의료사고로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그거 해결하기 위해 몇 년을 싸우는데…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 속에서 수백 생명의 숨이 끊긴 일을 어떻게 잊어요. 잊으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은 이 고통 모를테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야 하는 건가요? 고통받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게 아니라 고통을 멈추라고 온갖 압력을 가하는 것이 치유라고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유가족분들의 좌절과 슬픔, 분노와 억울함에 댈 수야 없겠지만 요즘 인생이 참 쓰게 느껴지네요. 아파하는 사람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비극적이고 비상식적인 차이 때문에 말이죠. 유가족들이 서러움으로 노숙을 하고 단식농성을 하는 자리에 경찰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에서는 분노를 넘어선 실소까지 나오더군요. 이것이 수천만을 대표하는 한 국가 권력의 현현이란 말인가. 정녕 그런 것인가.

서양 속담에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있죠. ‘수고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뜻이라는데, 이미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수고 없이, 아픔 없이, 자기 이익(gain)을 다 챙겨가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No gain, only pain.”(내 이익을 챙기지 못하면 힘든 일만 남는다.)라는 격언이 더 잘 적용되는 것도 같구요. 그런 분들이니 상처받은 자들의 영혼보다는 정치적 안위가 훨씬 앞서는 거겠죠.

“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교황의 말씀을 곱씹어 봐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 말은 “중립적이려 드는 사람은 고통을 모른다”, 아니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은 고통받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뜻 같아요. 부끄러움이 몰려와요. ‘그런 너는 중립을 깨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라는 질문이 들리는 듯해서요.

그래도 중립적이어서 아픔을 모르는 삶 보다는, 약한 사람들과 같이하며 아픔을 나누는 삶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아픔을 나누는 삶을 아름답다 느끼는 사회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상처를, 좌절을, 분노를 조금씩이라도 줄여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지금 손잡고 걷는 사람들이 정말 좋거든요.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이니까요.

진짜 사람들이요.

2014.8.26.

 

시간, 세월호, 그리고 일상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