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국 학생과의 대화

Posted by on Apr 23, 2016 in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1. “선생님, 한국에 살려면 손이 세 개 필요하답니다.”

“세 개요?”
“네. 왼손, 오른손, (손을 머리 중간에 올려 닭벼슬 모양을 만들고 고개를 까딱 하면서) 겸손.”
“아하 ㅎㅎㅎ”
“한국 사람 칭찬하면 무조건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겸손이 필요합니다!”
“네네 ㅎㅎㅎ”

2.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아닙니다. 제가 5년 째인데 얼마 전까지 지하철에서 카드 찍을 때 “환승”하는 소리를 “학생”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나 선생님이었는데 자꾸 학생이라고 해서 이상했어요.”
“ㅎㅎㅋㅋㅋ”

3. (석사생들 몇몇이 지도교수 선정 이야기를 꺼내길래) “Who would you recommend as a thesis advisor?” ((박사과정에 계시니) 논문 지도교수로 누구 추천하시겠어요?)
“I would avoid that question.” (그 질문은 좀 피하고 싶네요.)
“Oh, I see. The question is too politically charged.” (아 알겠습니다. 질문이 너무 정치색이 짙네요.)
(단호하게) “Yes.” (넵!)

4. “제 수업은 들을만 해요?” (한국어 수업이라서 던진 질문)
“네 재미있습니다. 근데 한국말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집중을 못해요. 그래서 사실 지난 번에는 물고기(fish) 생각을 했어요.”
“아 ㅎㅎㅎ ‘피쉬 앤 칩스’에서 그 피쉬요?”
“네. 어쩔 수가 없을 때가 있어요. 집중의 한계랄까.”
“아 그쵸. ㅎㅎㅎ”

학생들과 밥을 먹으면 교실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참 많이 보인다.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김치찌개를 즐겨 먹는, 정치 코미디와 사회언어학에 관심이 많은, 늘상 자전거 안장을 떼어서 들고 다니는 이 친구에게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간의 강행군,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풍성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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