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우리은행, 그리고 alien

영국 학생: 한국에서 좀 기분 나쁠 때가 있는데, 제가 한국말을 하면 사람들이 “와 우리말, 우리나라말 잘하시네요.”이렇게 말하는데 기분이 별로 안좋더라구요. “우리나라 말”이라는 게 우리, 너희, 이렇게 가르는 거니까. 한국말이라고 하면 될 걸 왜 꼭 ‘우리말’이라고 하는지.
나: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영어로 말하는데 누군가가 “You speak our language very well.” 이려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 같아요.
영국 학생: 네. 말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기분 나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류 작성할 때 외국인 신분을 에일리언(alien)이라고 하느데 (다른 외국인 학생들도 급공감) 이 말도 좀 그럴 때가 있어요.
나: 아 alien. E.T.?
학생들: ㅎㅎㅎ
영국 학생: 그리고 제가 싫어하는 은행이 있는데
나: ???
영국 학생: 우리 은행.
좌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국 학생: 우리 은행. 너희는 오지 마.
좌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국: 볼 때마다 잘 이해가 안되고… 무슨 말인지 알지만 기분은 별로 안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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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생: 제 친구 중에 하나는 한국 존대말 문화에 잘 적응을 못했어요. 그 친구가 한 가지 룰이 있는데, 자기한테 존대말로 말 걸면 존대말로, 반말로 말을 걸면 반말로 대답하는 거예요.
나: 아… Eye for eye…
영국 학생: 네. 그렇죠. 그러니까 자기보다 나이가 얼마나 많냐, 높은 사람이냐 그런 거 상관 없이 무조건이요.
다른 학생들: (웅성 웅성)
영국 학생: 그래서 어떤 일 있었냐면은,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자기한테 반말을 했는데 반말로…
나: 친구가 선생님인가 봐요.
영국 학생: 선생님 이.었.어.요.
나: 아… 과거형… ㅠㅠ 지금은…
영국 학생: 사정이 있어서… (말끝을 흐린다.) 아무튼 그 친구는 자기한테 반말하는 걸 인정하질 못했는데 나랑 그 친구 와이프가, 아 그 친구 와이프는 한국 사람인데, 같이 설명을 하려고 했는데 절대 말을 안듣더라고요.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무시하지 않더라도 나이 많은 사람이 반말을 쓰기도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어요.
나: 아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그런 경험은 없지만 중고등학교 때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똑같이 발음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싫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데 그땐 그냥 너무 싫었던 거 같아요.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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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훈

1.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소유다. 한국어는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이 소유하는 것, 영어는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 소유하는 것, 모든 언어는 그 언어의 화자에게 열린 자원.

2. 말하는 사람은 그냥 하는 말이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해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3. 우리은행이 잘못했네. 한국어로는 우리은행, 영어로는 YOUR Bank라고 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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