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정체성의 급격한 변화

Posted by on May 8,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한 선생님은 학교를 옮기며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첫 학교는 강남의 한 여고. 부유한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말썽을 피우는 학생 또한 거의 없었다. 눈치가 빨라서 한두 마디만 해도 교사의 의중을 바로 알아차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은 “이것 저것 잘 정리해 주는 학원강사”가 된 듯했다. 다양한 시험을 위한 내용 정리를 자신의 주요 업무로 여겼다. 학생들도 딱 그 정도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몇년 후 부임한 학교는 사회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학생들이 대부분인 서울 외곽의 남녀공학 중학교였다. ‘말 잘듣는’ 여자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날뛰는’ 남자 중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니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하루 하루 아이들이 사고치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고, 간혹 사고가 터지면 수습하느라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사고수습 과정은 자신이 생각했던 교사의 역할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요구했다. 내용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영어선생로서의 정체성은 희박해졌다. 어느날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자문하니 ‘철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지만 완전히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족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학생들의 삶의 양태를 상당 부분 결정하고, 그렇게 다른 삶을 대하는 교사들은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두 학교 모두에서 ‘교사’라 불리지만 일상은 판이하다. 그 결과,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선생은 교과내용을 가르치기 이전에 ‘학생’으로 호명된 인간을 만난다. 교과 내용은 미리 공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은 만나고 소통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사범대 4년 내내 ‘진공상태’에서의 교과교육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인간에 대한 고민을 깨끗이 거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기에 많은 사범대 졸업생들이 사범대 교육과정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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