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실 관찰 연구의 화두 – “수다” 그리고 학교 시공간의 재배치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신나는 시간은? 그렇다. 바로 쉬는시간과 점심시간이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칠 때마다 학생들의 에너지가 폭발한다.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소리가 천지를 흔든다. 학생을 위한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학교가 오롯이 학생의 것이 되는 때는 쉬는시간과 점심시간 뿐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아는 몇몇 학교에선 말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다른 관점에서 아이들을 본다. 수업을 빠져나와야 비로소 살아나는 학생들. 교사의 강의가 아니라 친구들과 수다에서 활기를 얻는 모습에서 “공부에 열의 없는 아이들”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지금도 “학교가 놀러오는 덴 줄 알아?”라는 잔소리는 전국의 학교에 울려퍼지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조용히 공부하자’는 제안 혹은 강압은 얼마나 교육적인가? “못떠들게 하기”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그토록 관심을 갖는) 학습효과 증진에 얼마나 효과적인가?

몇몇 학생들과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모둠활동 하면 뭐가 좋아요?”
– “음… 친구랑 이야기할 수 있는 거요.”
“친구랑 이야기하면 뭐가 좋은데요?”
– “그냥 놀기도 하고, 모르는 거 있을 때 얘기도 하고… 하다가 쉬기도 하고…”

이 짧은 대화는 모둠활동의 가치를 오로지 ‘학습효과 증진’으로 파악하는 접근의 명백한 한계를 설명해 준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모둠을 통해 학습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지만, 학생들이 모둠을 통해 얻는 것은 놀 수 있는 시공간이다. 교사의 의도와 학생의 활동에 어느 정도 교집합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교사의 학습의도가 곧바로 학생들의 학습활동이 되진 않는다.

모둠활동의 핵심을 “학습의 의무”나 “주어진 문제해결”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언제든 생각을 표현할 권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것들이 새롭게 드러난다. 뼈아픈 것은 전자의 목표 즉 학습 결과에만 집착할 경우 학습 과정에서의 사회적, 정서적 요인들이 무시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같은 접근은 학습결과에 직격탄을 날린다. 효과적 학습이라는 명분 하에 인지발달의 조건이 되는 동기적, 정서적, 사회적 토대를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실의 실질적 변화를 꾀하려면 학생들의 몸의 리듬과 정서적 에너지를 고려하여 학습 및 놀이를 위한 시공간을 재배치해야 한다. 학습이 일어나는 정의적(affective), 사회적, 물리적 환경을 바꾸지 않고 학습법만을 바꾸려는 시도는 언제나 사상누각에 그치고 만다.

교사의 과업(task)이 아이들의 수다방(chat room)이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학생들도 교사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느끼고 저항하는 주체(agent)이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것을 잊거나 무시하는 게 ‘어른들의 특기’인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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