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교육공학?

Posted by on May 27, 2016 in 강의노트, 과학,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깔끔한 교육공학?] “문제”를 정의하는 행위는 정치적이다. 예를 들어 보자. ADHD는 ‘문제’ 혹은 ‘질병’인가? 수업시간의 수다는 정말 ‘문제’인가? 영어에 대한 흥미가 없는 학생은 ‘문제적 상황’에 놓인 것인가? ‘문제’와 ‘비문제’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며, 대개 ‘문제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 의해 확정된다.

정의된 문제의 범위와 심각성에 따라 ‘해법’이 달라지고, 이에 동원되는 자원과 인력이 배분된다. 이런 면에서 교육의 문제를 푸는 다양한 기술, 전략, 시스템 등을 연구하는 교육공학 또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부자인 내가 보기에 주류교육공학은 너무 ‘깔끔한’ 학문이 되어버렸다. 문제도 해법도 참 ‘바르게’ 보일 때가 많은 것이다.

교실에서 맞딱뜨리는 문제는 선생-학생의 상호작용을 넘어서서, 선생이 담지한 세계와 학생이 담지한 세계가 충돌하면서 일어난다. 그런데 교수학습전략은 세계의 충돌이라는 사태의 극히 일부분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 또한 관계의 단면을 변화시킴으로서 또다른 국면을 만들어 낼 뿐, 관계를 송두리째 바꾸지는 못한다. ‘해결사’로서의 교수학습전략 이나 ‘혁신적 기술’의 도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교육의 근본적 변화에 주목하는 교육공학이라면 사회문화적, 정치적 모순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다. 교육이라는 ‘문제상황’에서는 다양한 매개(mediation)가 있을 뿐, 궁극적 해법(solution)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교육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 있지 선생과 학생이 맺는 관계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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