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의 뜻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고학년용 학원 단어 학습지를 본 적이 있다. “Water – 물”, “subway – 지하철”과 같이.전형적인 ‘영단어-한국어 뜻’ 포맷이었다. 처음엔 그런가 싶었는데 읽어 내려갈수록 짜증이 슬슬 몰려왔다. 바로 아래 문제 때문이었다.

“is”
“have”

“Is”를 한 단어로 어떻게 정의할까? 선생님이 의도한 답은 “~이다” 정도였겠지만 BE동사를 한 단어로 정의하는 과정에는 과도한 단순화가 수반된다. “I am tall.”이나 “We are here.와 같은 단순한 문장만 해석해 봐도 이런 1:1 대응의 문제가 대번에 드러난다.

나를 경악하게 한 것은 “have”였다. 당연히 본동사로 사용된 “have”라고 생각했기에 “가지고 있다, 먹다” 정도의 답을 예상했다. 확인을 위해 교재 예문을 보여달라고 하니 맙소사 “have p.p.”의 ‘have’다. 조동사 have를 한국어 단어 하나로 써보라고?

6학년 친구에게 ‘그 have라면 한국어로 딱 말하긴 힘들고 설명을 해줄게’라면서 다양한 문장의 예시를 들어주려는데 “왜 뜻이 없어요? 다른 건 다 있는데 얘만 왜 없어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짜증과 궁금함이 9:1 정도로 섞인 목소리였다. 순간 나도 “그건 한마디로 설명이 안되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짜증1과 궁금함 9가 섞인 목소리였는데, 다행히 그 친구는 나의 짜증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친구의 질문 이면에는 단어학습의 역사가 숨어 있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수년 간 영단어 학습지를 풀어왔고, 모두 ‘정답’이 있었다. 이런 경험으로 ‘모든 영단어는 딱 맞는 한국어 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비슷한 포맷의 단어학습 및 시험 경험이 축적되어 한국어-영어 관계에 대한 일종의 메타언어적 지식(metalinguistic awareness)이 형성된 것이다.

한국어-영어 짝으로 된 단어학습 및 평가는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피상적으로나마 단시간 내에 많은 단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형태의 학습/평가지는 대개 ‘애증’의 대상이다. 좋아하진 않지만 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위 의견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하지만 BE동사의 뜻을 한 단어로 쓰라는 요구는 피해야 한다. 교사가 “is”의 정답을 “~이다”로 한정하면 학생은 많은 문장에서 “왜 이 is가 ‘~이다’지?”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조동사 “have”의 의미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들다면 문제로 출제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조동사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어와 영어의 모든 단어들이 양말짝처럼 가지런히 대응된다면 왜 번역가들이 적절한 번역어를 찾느라 머리를 싸매겠는가? 아, 정정하겠다. 사실 양말도 짝이 안맞는 경우가 꽤 된다. 하물며 복잡다단한 문화와 개념체계를 매개하는 언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작은 효율을 추구하다가 언어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키우는 우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어 단어는 영어와 1:1로 대응되지 않는다. 그 어떤 언어도 1:1로 대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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