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자 이제 이해가 되나요?”
“아뇨.”
“아… 뭐가 헷갈리는지 이야기해 볼래요?”
“음…. (조금 긴 침묵) 둘다… *쓰는* 건데 왜.”
“아… 하하하. 미안해요. 다시 설명해 볼게요.”

얼마 전 중학생 친구가 “부정사의 형용사적 용법”이 뭐냐며 다짜고짜 물었다. 학교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시긴 했는데 이해가 잘 안된다는 거였다. 나는 아래 주어진 ‘유명’ 예문을 가지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a. I have a letter to write.
b. I have a pencil to write with.

타동사의 목적어와 전치사의 목적어를 동시에 제시하는 일이 탐탁진 않았지만 시험 단골 메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뭐 다들 아는 뻔한 설명방식. a는 write a letter와 대응되고 b는 write with a pencil과 대응된다. 따라서 ‘a letter to write’으로 충분하지만, ‘a pencil to write’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 바로 with이다.

차근차근 설명을 했음에도 학생이 여전히 갸우뚱한 표정을 지은 건 “쓰다” 때문이었다. a는 “쓸 편지가 있다”로, b는 “(가지고) 쓸 연필이 없다”로 해석되곤 한다. “(가지고)”를 추가하긴 했지만 일상 생활에서 “가지고 쓸 펜이 있다/없다”라는 식의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지고’가 들어가 있는 문장을 들었음에도 ‘쓸’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쓸’의 중의적 의미가 혼동을 초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1) ‘to write’과 (2) ‘with’가 가지고 있는 ‘도구’의 의미, 굳이 동사로 표현하자면 ‘to use’의 의미 말이다. (cf. ‘쓸 돈이 없다.) 아마도 이런 점들 때문에 학생이 두 문장을 구별하는 데 애를 먹지 않았을까?

전치사와 타동사의 목적어라는 개념이 머리 속에 명확히 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두 예문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습자에게는 아주 작은 차이도 이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부정사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타동사의 목적어와 전치사의 목적어를 대비시켜 가르치고, 두 가지 형태를 구분하는 시험을 칠 필요가 뭐 있겠냐는 생각이지만, 굳이 그러겠다면 “a letter to write”에 상응하는 예문으로 “a pencil to write with”보다는 “a pool to swim in”(들어가서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 정도가 어떨까 싶다.

덧댐: 오늘은 “I must finish my homework by tomorrow.”를 수동태로 바꾸는 문제에서 애를 먹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왜 그랬는지 추측해 보시길 바란다. ^^

2 Comments

  1. 서울비
    June 14, 2016

    “먹을 컵이 없다.” (컵을 먹다가 아닌데)
    “밥먹을 사람이 없다.” (사람을 밥먹다가 아님)

    위와 같은 문장들 생각해보면
    “쓸 펜이 없네”의 ‘쓰다’가 use 가 아니라 write with 가 맞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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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gwoo
      June 14, 2016

      그럴 거 같네. 그럼 ‘쓸만한 펜’의 경우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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