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글쓰기 발달 7단계

(초짜 선생의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에 의거한 설명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단어 갈아 끼우기’ 단계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규칙에 맞게 단어를 배열하는 것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을 먼저 생각하고 단어를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 문장을 만드는 단계이다. ‘작문’이라기 보다는 ‘조립’이 더 적절한 명칭일 수 있다.

2. 문장별 공략 단계

“한국어 문장에 대응하는 영어 문장 만들기”가 글쓰기의 주요 모드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체적으로 고려하기 보다는 ‘문장별 문제해결’에 매달린다. 한 문장 한 문장이 큰 산으로 느껴지는 단계로, 성문 시리즈의 번역연습 문제를 읽기만 해도 숨이 차오른다.

3. 템플릿 이용 단계

쓰고자 하는 글과 비슷한 장르의 샘플을 가져다가 템플릿으로 사용하는 단계다. 수험자의 경우라면 학원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배포된 시험대비 에세이 템플릿을 사용한다. 형식이 거의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표현을 바꾸는 작업이 주로 사용된다. 템플릿 바깥으로의 ‘탈출’은 좀처럼 시도되지 않으며, 시도한다 하더라도 ‘감당이 안되는 뒤처리’에 압도되어 이내 템플릿 안으로 ‘복귀’한다.

4. 포스트-템플릿 단계

템플릿 사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자신의 메세지에 맞게 템플릿의 다양한 요소들을 변화시키면서 글을 쓰게 된다. 문장 단위에서, 문단 단위에서, 또 글 전체의 흐름 수준에서 나름의 창조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영화나 음악처럼 글쓰기 장르(genre)에도 상당한 유연성이 있음을 자각하게 되는 시기다. 글쓰기에 있어 ‘맞는 구조’ 혹은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내용과 형식의 적절한 관계가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5. 그럭저럭 장문을 쓸 수 있는 단계

포스트 템플릿 단계가 지나 글의 분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써내려갈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여전히 영어 글쓰기가 어렵지만 마음을 먹으면 장문을 완성할 수 있는 단계인 것이다. 영어 글쓰기 과제는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최선을 다하면 그럭 저럭 써낼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있다.

가끔은 글을 쓰다 말고 ‘내가 썼지만 이 문장 진짜 괜찮군’이라며 혼자 흐뭇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끔은 멋진 문장을 써낼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하는 것이다. 4-5 단계의 특징은 각색(adaptation)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6. 단어와 표현, 메타포와 문장 구조를 세심히 따지는 단계

이 단계에 이르면 ‘저자로서의 목소리(authorial voice)’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글쓰기는 단순한 내용전달을 넘어, 사고의 구조와 스타일을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눈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단어와, 표현, 메타포와 유비, 흐름과 단절, 운율과 리듬, 관습과 파격’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과정 속에서 쓰기의 핵심은 분량을 채우는 초고가 아니라 반복적인 퇴고에 있을을 깨닫게 된다. 이 단계의 특징은 성찰(reflection)과 변주(improvisation)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7. 일상적 사고 도구로의 전화

영어 글쓰기가 ‘마음을 굳게 먹고 목욕재계를 한 후에야’ 가능한 활동이 아니라 늘상 사용하는 도구가 된다. 영어 글쓰기가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스런 작업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진전시키고 수정하고 조율하는 사고의 도구(thinking tool)가 되는 것이다. 매뉴얼과 템플릿에 입각한 글쓰기를 넘어 관심있는 영역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유로운 논평을 할 수 있는 단계로서, 종종 영어 글쓰기에 몰입하는 경험을 한다.

이 단계에서 자신의 글쓰기 능력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편으로 쓰기와 사고의 과정이 상호교섭하며 유기적으로 발전한다는 확신이 생긴다. 오랜 시간 연마해 온 특정한 장르에서는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 친숙하고 유용하게 느껴진다. 반면 “비원어민 화자”로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뼈아픈 사실에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 글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기쁨과 고통을 모두 느끼지만 종종 찾아오는 ‘태생적 한계’에 대한 고민에 괴로워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이다.

경험상 글쓰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질적 변화가 관찰되는 것은 4번과 6번 단계이다. 전자가 ‘구조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단계라면, 6번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발현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선생으로서 나의 목표는 글쓰기 발달의 가장 첫 단계에서부터 자유로운 작가를 키워내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더 자세히 정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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