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 덕에 만난 엉거주춤 인생들

Posted by on Jun 19,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애처로운 냥이 울음 소리에 밥통을 챙겨 발걸음을 재촉한다. 건너편 건물 곁 후미진 곳에서 회색빛 도는 고등어와 접선 성공, 기쁜 맘으로 밥을 건넨다. 오물 오물, 오도독 오도독, 입안에서 사료 부서지는 소리는 언제나 경쾌하다. 그거 아니? 너희들에게 밥을 줄 때면 밥값 못하는 인생이 잠시나마 구원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는 거. 따뜻한 맘으로 일어서는데 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 “여기서 고양이 밥 주지 마세요.” 내 또래 남자가 준엄한 경고를 날린다. 바로 물러설 수는 없지. “밥을 안주니까 쓰레기봉투를 뜯더라고요. 그래서…” “그래도 주지 마세요. 여기 배설물 때문에 여름에 얼마나 힘든데요.” 사뭇 결연한 말투에 바로 꼬리를 내린다. 더이상 밥은 안주겠다, 미안하다며 대화를 접으려 하는데.

나의 공손함(?)이 성에 안찼는지 몇 마디를 더 얹는다. 자기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키워본 적도 있다고. 걔들도 생명이니 어쩔 수는 없지만 구청에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할까 고민중이라고. 아무튼 이쪽에다가 밥은 절대 주지 말라고. 다시 한 번 알았다고, 죄송하다고 말하며 돌아선다. 집 계단을 올라오며 그의 말을 복기한다. 고양이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이유없이 고양이를 혐오하는 못되먹은 인간은 아니다. 나는 고양이가 불편하지만 너는 나를 불편해하지 말아라. 하긴 어디 그 사람 뿐이겠는가. 나 또한 비슷한 변명을 수도 없이 한다. “생태적 삶을 배척하진 않지만 편리한 게 좋지.” “여기서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안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엉거주춤한 인생들. 아저씨도. 나도.

키키처럼 고양이랑 이야기할 재주라도 있으면 조용한 곳으로 불러서 도란 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도시락도 까먹고 그럴텐데. 마법은 없고 겁은 많아서 아무래도 그리로 배달은 안되겠다, 냥이야. 새로운 달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속세를 밝힐 달은 저 달밖에 없을 거야.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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