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사, 부정관사, 그리고 총체와 가능성으로서의 세계

철학과 언어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듯한 예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the”와 “a”가 world와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다음 예문을 보시죠.

a) The world is full of sorrow.
b) We want a better world.

위의 두 예문에서 ‘world’ 앞에 서로 다른 관사가 쓰였습니다. a)에는 정관사 the가, b)에는 부정관사 a가 쓰였죠. 왜 이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요?

아시다시피 일반적으로 ‘세계’라고 말할 땐 ‘the world’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유일한, 그리고 특정한(specific)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b)에서 ‘world’는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입니다. 지금 눈앞의 세계는 하나일지라도 미래에 가능한 세계의 가능태는 수없이 많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a world’입니다. 그렇기에 ‘a better world’ 뿐 아니라 ‘a greater world’, ‘an ideal world’ 등의 표현도 가능하죠.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현재 지구에서 ‘달’이라고 하면 하나의 달을 떠올립니다. (여기에서 지구를 돌고 있다는 다른 달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죠. ^^) 그렇기에 ‘달’이라면 “the moon”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달의 양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달의 여러 모양 중 하나인 ‘큰 보름달’은 ‘a great full moon’이라고 할 수 있죠. ‘A blue moon’이나 ‘a half moon’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구요.

세계는 하나의 총체이지만 가능성으로서의 세계는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달은 하나이지만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죠. 유일하게 정해진 것(definite)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코 특정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indefinite) 것입니다. 총체로서의 세계와 양태로서의 세계는 이렇게 언어 속에 절묘하게 드러납니다. 적어도 영어 관사의 경우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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