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길

Posted by on Jul 9,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우연히 들어선 길에 피땀을 쏟아붓게 되고 거기 정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R을 가지고 자연어처리 기본을 배우고 있다. 분명 뭘 좀 알았던 것 같은데 막상 실습을 하려면 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얘진다. 악기나 외국어 같아서 쓸 일이 없으면 손에 익지 않는 듯하다.

전산언어학의 도구를 다룰 때마다 ‘내가 만약 학부 1학년 때 NLP 수업을 들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성향으로 봐서 분명 자연어처리를 전공하고 그쪽으로 밥벌이를 했을 것 같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기술’도 좀 익혔을 듯하고. (현재 = 무기술)

하지만 나는 전형적인 언어교수법 과목들과 애매한 문학, 어학 과목들을 들었다. 아닐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석사과정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은 공부를 했다. 이때 내 공부의 길이 대충 정해졌던 것 같다. 그나마 IT 쪽으로 한참을 돌아온 것이 내 인생의 ‘우회로’가 되었다.

소위 ‘해외 명문대’에 대한 환상은 없지만 가끔 부러운 장면이 있으니, 학부 1학년 대상 개론 과목에서 각 분야의 ‘대가들’이 번갈아 들어오는 경우다. 공동강의 형태로 돌아가면서 자기 분야 이야기를 풀어놓는 식이다. 솔직히 한두 주 강의에서 뭘 그리 많이 배우겠나. 하지만 오랜 시간 자기 분야를 개척해 온 선구자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는 건 배우는 이에게 굉장한 복 아니겠나.

선택지가 많아진다고 인생이 쉬워지진 않는다. 하지만 학문의 지형을 조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몇 마디가 어두워만 보이는 공부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잘 드는 비유를 들자면 “에베레스트 등반을 글로 배운 사람과 셰르파들과의 훈련 속에서 배운 사람이 같을 수 있겠는가?”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유치한 일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그닥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끔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자기 일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 나의 실눈이 순식간에 보통 크기가 되곤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암튼 기술을 계속 익혀보자. ㅎㅎㅎ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