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하는가 그리고 언어의 의미

 

드라마 <Humans> 시즌 1 두 번째 편의 한 장면. 인간을 빼닮은 로봇 Anita가 Hawkins 부부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온다. 인간의 감정을 소유한 Anita가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음을 눈치챈 Laura Hawkins. 자신의 방에 찾아온 Anita에게 “I’m watching you.”라고 말한다. 그러자 Anita도 바로 응수한다. “I’m watching you, too, Laura.” (아래 예고편 22초) 똑같은 “I’m watching you”이지만 이 두 말의 의미와 효과,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언어가 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하는가>가 말의 궁극적 의미와 효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래 예에서는 대화자의 범위가 인간을 넘어 기계로 확장되고있기에 <누가 말하는가>의 효과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소비자의 입에서 나온 “괜찮은 가격”과 판매자의 “괜찮은 가격”은 다르다. 권력자가 말하는 “중립”이 사회적 약자의 “중립”과 같을 수 없고, “평등”이라는 말조차 누구에 의해 발화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누가 말하느냐’가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요소임을 고려한다면 겸양의 표시로 “제가 좀 모자라서요”라고 말한 사람에게 “동의합니다. 그쪽이 좀 모자라죠.”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의 영어교육에서 방기되어 온 맥락(context)의 복원. 오랜 시간 갖고 있는 화두다. 첫 걸음으로 <텍스트 쓰기>에서 <맥락 쓰기>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아래 클립과 같이 “똑같은 문장으로 대화문 만들기”가 재미있을 것 같다.

Laura: I’m watching you.
Anita: I’m watching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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