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사이, 그리고 종교적 태도

Posted by on Aug 24, 2016 in 강의노트,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아래 짧게 언급한 텍스트 읽기의 원리와 종교적 태도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1. 문자주의는 모든 것의 중심에 텍스트를 놓는다.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와 맺는 관계는 철저하게 차단된다. (있는 걸 없는 척 하기는)

2. 홀로 존재하는 텍스트는 인간의 해석 대상이라기 보다는 인간을 해석하는 주체다. 텍스트에 생략된 텍스트를 쓸 권리를 박탈당한 개인들은 해석(interpretation)이 아닌 해독(decoding)을 강요당한다.

3. 해독은 맞거나 틀리다. 의미가 연속체(continuum)라는 생각도, 맥락화(contextualization)도, 개인화(personalization)도 이단일 뿐이다.

4. 텍스트와 텍스트의 거리가, 또 텍스트와 개인간의 거리가 확보되지 못하면 ‘사이’는 없다. 사이가 없을 때 이해는 불가능하다. 책을 눈에 붙여 보라. 글이 읽히는가?

5. 이해불가능성은 두 가지 층위에서 나타난다. 텍스트의 이해불가능성. 타인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 텍스트 해독이 옳거나 그르다면, 다른 사람의 해독도 옳거나 그르다. 사람을 옳다/그르다로 판단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해진다.

6. 그러나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에 믿음의 핵심은 개개인이 만들어 낸 ‘사이’가 다른 ‘사이’와 만나는 데 있다. 사이의 사이가 만나 또 다른 사이를 만드는 일. 그 사이가 또 다른 사이와 부딪치는 일. 때로 사이들의 일파만파 속에서 자신 속의 텅 빈 공간을 응시하는 일.

7. 피곤한 오후다. 오늘은 사이가 없이 바쁜 날이다. 그래서 그 사이를 만들기 위해 별 영양가 없는 포스팅을 두 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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