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리터러시 단상

Posted by on Sep 21, 2016 in 강의노트, 과학,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대중을 위해 더 쉽게 쓰라”는 압력에 대해 불만을 떠뜨린다. 학계의 평가가 논문 생산량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실, 개별 학문 분과의 고유성, 과학자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과학 이외의 업무 부담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항변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쉽게 써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보다 더 무겁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가치있는 지식이 전체 사회구성원들과 효율적으로 공유되고 있는가”, 나아가 “혹시 그렇지 않다면 공유의 지평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방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과학적 지식의 공유는 과학자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소통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과학 리터러시가 적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 자본, 과학의 어그러진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직접적으로 과학 담론을 왜곡하는 원인은 과학저널리즘의 부재와, ‘비과학-미신짬뽕저널리즘’의 과재(夥在)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빈약한 과학-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언론과 교육이 손잡고 비과학적 소통을 조장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과학 리터러시를 떠받치는 기둥은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능력이다. 이는 비판적 사고의 핵심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필요할 때 쉽고 빠르게 믿을만한 정보원에 접근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정보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개인이 합리적인 절차를 걸쳐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전자는 지식 생산 및 유통 시스템의 수준, 후자는 개인의 지식 향유 행태와 관련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둘이 유기적 관계에 있지만, 사뭇 다른 무게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양질의 과학지식이 유통되고 점차 많은 사람들이 이를 향유하게 되면, 점차 ‘쓰레기’ 기사들은 발붙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단편적이고 선정적인 지식이 ‘클릭 낚시’를 위해 분별없이 유통된다. 전자의 경우 과학지식의 유통과 소비가 선순환적 관계를 맺지만, 후자의 상황에서는 개개인이 정보의 신뢰를 판단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동원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혹은 당연하게도!) 몇몇 소수를 제외한다면 정보의 신뢰등급을 판단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유통되는 과학지식의 양과 질이 개개인의 지식 소비 행태, 나아가 정보 분별을 위한 노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 리터러시는 개인의 역량(competency)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인프라에 가깝다. 엉터리 지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지식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요구하는 것은 도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고 안전한 운전 역량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위험한 도로에서도 매끈한 운전솜씨를 발휘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언제나 예외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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