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용어와 일상용어의 경계 – 현재완료의 ‘경험’

“현재완료가 경험, 계속, 결과, 완료라는데 잘 이해가 안돼요. 설명해 주세요.”

“(프린트를 보며) 경험은 여기 나온 것처럼 ‘~해본 경험이 있다’는 뜻이예요. 예문은 I have been to Paris. 파리에 가본 적이 있다.”

“그럼 I went to Paris.는요? 그것도 경험은 한 거잖아요.”

“경험을 하긴 한 거죠.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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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양보절’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중학생 친구 프린트를 봐주다가 위와 같은 대화를 하게 되었네요.

현재완료의 용법으로 대부분의 문법서들이 “경험, 계속, 완료, 결과’라는 분류를 제시합니다. 사실 제가 ㅅㅁ 시리즈로 공부할 때도 같은 용어를 썼던 것 같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일본 문법서의 영향이 컸던 듯합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문법용어(metalinguistic terms)가 이해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완료도 예외는 아니죠.

우선 현재완료는 ‘완료’라는 단어를 담고 있죠. 이는 Present Perfect의 번역어인데, 여기에서 일단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일상용어에서의 완료와 문법적 시상(grammatical aspect)에서의 완료는 사뭇 다른 개념이니까요. 전자가 ‘끝!’의 의미라면, 후자의 의미는 상당히 복잡하죠.

나아가 하위 분류인 ‘경험, 계속, 완료, 결과’에 다시 ‘완료’가 나옵니다. 현재완료 안에 또 완료가 있으니 혼동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도 맨 처음 현재완료 문법을 접할 때 ‘완료 안에 완료?’라고 질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이 이런 용어의 벽에 부딪쳐 영어에 흥미를 잃는 경우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이는 국어교육에도 마찬가지여서 몇몇 학생들은 ‘체언, 용언, 관계언’ 등의 용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국어가 싫어진다고 하더군요.

위의 대화에서 나온 현재완료의 경험 용법은 ‘~해본 적이 있다’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현재를 기준으로 봤을 때 경험해 본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설명하면 뭔가 부족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I have been to Paris.는 I visited Paris.라는 경험을 담고 있는 것이고,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험’의 의미에 비추어 보면 둘다 경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좀더 나은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대략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 실제로 일어난 일은 한 가지예요. 철수가 파리에 간 적이 있는 거죠. 말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한 가지 사건을 보고 어떤 애는 ‘철수가 동석이를 때렸다’라고 하는데 다른 애는 ‘동석이가 철수에게 맞았다’라고 하죠. 그것처럼 철수가 파리 간 적이 있었다는 걸 과거로 말할 때와 현재완료로 표현할 때는 미묘하게 뜻이 달라져요.

Chulsoo went to Paris. 라고 하면 그냥 ‘철수가 파리에 갔다’의 의미예요. 그래서 철수의 과거 여행을 묘사할 때 ‘철수는 파리에 가서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몽마르뜨에 가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라는 표현을 한다면 “Chulsoo went to Paris.”가 적당할 거예요.

근데 Chulsoo has been to Paris. 라고 하면 이 문장을 말하는 순간 그러니까 바로 지금의 시점에서 철수라는 사람은 파리에 갔다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게 강조되는 거예요. 다시 말해 이 말을 할 때에는 현재가 중요하죠.

그래서 이걸 영어로 하면 “Chulsoo has the experience…” 정도의 의미가 될 거예요. 한국어로는 ‘~한 적이 있다’, ‘~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정도가 되구요.”

문법용어라는 숙제, 언젠가 끝내야 할 것 같은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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