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안외워지는 이유

학생들이 잘 외워지지 않거나 헷갈린다고 답한 단어들. 여기에는 음성, 철자, 의미, 빈도수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학교 때 deduce와 induce가 헷갈려서 한참 헤맸던 기억이 난다. (의미와 형태가 동시에 작용) inflammable은 flammable과 반대인가 싶었던 때도 잠깐 있었는데,(접두사 in-의 일반적인 의미를 적용하려는 습관) 한 학생이 똑같은 이야기를 해서 새삼 반가왔다. Pomegranate가 석류라는 건 몇 번 본 적이 있는 듯한데, 쓸 일이 전혀 없어 뜻을 잊는 경우가 잦다. 한 학생은 Innuendo와 같은 단어가 입에 붙지 않아 기억이 잘 안난다고 했다. (발음) 그리고 우리(적어도 나와 아래 한 학생)의 영원한 숙제 push & pull. 그냥 볼 때는 아는데 빠르게 걸어가며 문을 열어야 할 때 의사결정은 늘 어설프다. (의사결정의 상황) 이와 관련하여 예전에 썼던 글을 덧붙인다.

<Push와 Pull 그리고 USB>

*혹시 여러분들도 저처럼 push랑 pull 헷갈리시나요? 그렇다면 이 글을 재미있어 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pull 과 push 가 평생 헷갈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학적 실험은 안해봤지만 이런 요인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우선 언어적인 면이 있습니다. push / pull 자체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둘 다 /푸/로 시작하죠. 게다가 두 단어 모두가 무척 짧고, 음절 수도 같습니다. 원래 짧은 단어들이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또 pull 을 “밀다”로 생각하게 되는 건 한국어와 영어 단어 사이의 음운적 유사성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밀다”에 [l] 발음이 존재하니까요.

두 번째로는 심리/인지적인 면이 있습니다. pull/push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은 대부분 빠른 판단을 요하죠. 누구도 멀리서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아, 저거 push니까 밀어야지. 불끈!”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문 앞에 바로 다다랐을 때 혹은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에 밀어야 할 지 당겨야 할 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인지적으로 부하가 걸리게 되죠. 모국어가 아닌 단어 선택에 대한 빠른 판단을 요하는 과업이므로 비원어민으로서 어느 정도 혼동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결정에 따르는 위험 risk 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당겨서 안되면 밀면 되고, 밀어서 안되면 당기면 됩니다. 조금 창피한 건 시간 지나면 금방 잊혀지죠. 따라서 이 결정의 결과에 대한 학습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좀 헷갈려도 참고 사는 거죠.

이건 USB를 꽂을 때 겪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반대로 꽂아서 연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도, 이후에 슬롯과 USB 방향을 정확히 맞추어서 꽂겠다는 생각은 잘 안하게 됩니다. 잘못 꽂으면 돌려서 다시 꽂으면 되고, 운이 좋아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한 번에 접속이 되면 왠지 횡재한 거 같거든요. (네, 저 단순합니다.) USB가 제대로 꽂힐 확률은 저처럼 부주의한 사람에게는 대략 50퍼센트일텐데, 실패한 경험이 머리에 많이 남아서 굉장히 자주 실패하는 것처럼 기억에 남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미시오’ ‘당기시오’로 통일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것 같습니다. 왜 어떤 문에는 push/pull 사인이 붙어있는지. ㅠㅠ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장소라면 병기하면 될 거구요.

추신: 사실 오랜 시간 push/pull 구분이 바로 바로 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탁구 용어 중에 Push라는 기술이 떠올랐죠. 그 이후에는 그나마 덜 헷갈리더라구요. 탁구에서 라켓을 잡아당기는 기술이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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