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배우기, 디자인, 그리고 언어교육

기타를 무척 좋아한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웬만한 코드는 잡는 거 같다. 손가락이 지판 위를 미끄러질 때 나는 마찰음을 좋아하고, 한없이 반복되는 단순한 리프가 새로운 세계로 빠져나오는 순간을 고대하곤 한다. 무엇보다 기타를 치며 옛날식으로 김광석 노래를 부르는 걸 즐긴다. (써놓고 보니 너무 아재틱… ㅠㅠ)

하지만 나같이 평범한 기타 초심자가 생각하는 기타와 기타연주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 놓은 이들이 생각하는 기타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예를 들어 아래 Andy McKee의 핑거스타일 연주를 보자.

우선 이런 연주는 기타의 거의 모든 물성을 동원한다. 기타를 딱 봤을 때 눈에 띄는 표지(signifiers)나, 디자이너가 암묵적으로 제시한 지시사항들(instructions)은 그닥 의미가 없다. 핑거스타일은 기타를 단순한 발현악기가 아닌 타악기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둘을 동시에 실재로 만든다. Andy McKee는 그야말로 기타를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타를 배우는 일은 관습에 기반한 테크닉을 배움과 동시에 관습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탐색이 어느 경지에 오르면 기타는 현악기도 타악기도 아닌, 그저 ‘기타’가 된다. 그리고 그때의 기타는 그냥 개별 악기로서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Andy McKee가 되고, Tommy Emmanuel이 된다.

이를 아래에서 살펴본 디자인 원리와 연결시켜 이해해 보자. 초심자에게 주어진 기타는 지켜야 할 규칙으로 가득하다. 줄을 튕겨야 할 위치가 있고, 몸통을 함부로 쳐서는 안되며, 몇몇 코드를 익히기 전에 자유로운 연주를 꿈꾸는 것은 해롭다. 단계를 하나 하나 마스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무대 위에서 기타를 난폭하게 뽀개버리는 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관습의 총합체로서의 악기를 파악하는 것은 악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인가? 프로가 되려는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악기를 관습에 가두어놓는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다. 개념적 측면에서 악기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파악하는가, 행동의 제약조건으로 파악하는가는 분명 다른 태도와 결과를 가져온다.

‘가지고 놀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악기나 사진을 배울 때 기본기 연습에 눌려 흥미를 놓치고 결국 완전히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악기나 사진기와 놀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고 차차 본격적인 훈련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Play with the instrument”로 시작하여 with를 점차 떼어내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말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언어 구사를 위해 특정한 어휘와 문법을 완벽히 익혀야 한다고 강변하는 건 말에 대한 지식을 늘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을 배우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수많은 문법서와 문제집이 제시하는 정답에 매여 말의 총체성 — 말의 아름다움과 추함, 소리와 리듬, 말에 얽힌 감정, 태도, 분노, 좌절, 그리고 삶 — 을 놓치고 있는 우리를 본다.

언어교육의 목표는 낡은 규칙을 배워 새로운 체계를 창조하는 데, 남의 규칙을 통해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지금 우리는 낡은 규칙을 낡은 방식으로 가르쳐 이미 존재했던 세계 복제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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