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배운 문법의 한계

아래 이야기를 좀더 해보면 이렇습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이 있고, 그중 전형적인 문법교육이 의지하는 것은 개념적(conceptual) 자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대부분 그러셨겠지만) 저는 문법을 글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3인칭 단수를 배울 때 “주어가 3인칭 단수면 동사의 현재형에 -s 를 붙인다”라는 설명을 외웠죠. 그리고 문제를 열심히 풀었습니다. “아 Tom은 나도 너도 아니고 다른 사람인데 1명이니까 -s를 붙여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동사에 s를 붙이고 흐뭇해했죠. 이 예에서 저는 오직 개념적 설명에 의지해 문제를 풀었습니다. 지필평가에서는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외국어 학습에서 개념적 지식은 다양한 지식의 양태(mode)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외에 어떤 양태가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각(perception)입니다. 발화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청각일텐데요. 다음 두 예시를 봅시다.

A building is …
The buildings are …

첫 번째 표현에서는 “A”가 나옵니다. 발음은 /ə/죠. 그리고 나서 “is”가 등장합니다. 이런 표현 즉, <단수를 나타내는 부정관사 a/ə/+명사>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면 /ə/라는 소리와 단수 동사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우리 뇌가 기억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표현은 “BuildingS are …”와 같이 복수를 나타내는 “s” 즉 /z/ 발음이 나오고 뒤에 복수 동사인 are가 나옵니다. 이렇게 명사 끝에 /z/ 발음이 나오고 are가 나오는 예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면 /z/와 / άːr/가 결합되는 소리(한국어로 대충 쓰면 즈아 ^^)가 귀에 익어서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서 A building is … 나 The buildings are … 와 같은 표현들을 반복적으로 발음하면 /zάːr/와 같은 발음에 익숙해집니다. 흔히 ‘입에 붙는다’고 하죠. 이때 형성되는 것은 운동기능(motor skill)을 기반으로 하는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 입니다. 이건 “3인칭 단수에 s를 붙여라”라고 하는 개념적 지식과는 매우 다른 양태를 띄고 있어서, 뇌와 구강, 혀의 움직임 등이 실시간으로 협응(coordination)되어야만 제대로 작동합니다.

여기에서 ‘글로 배운 문법’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글로 배운 문법은 개념적 지식에만 의존할 뿐 소리를 인지하고 구별해 내는 지각(perceptual) 자원도, ‘몸이 기억하는’ 세밀한 운동기능도 활용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글로 배운 문법은 글쓸 때는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실제 발화에서는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을 합니다. 문법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글로 배운 문법’을 넘어서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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