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제일 이쁘신 듯 ^^

Posted by on Oct 19,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할아버지 한 분이 불쑥 옆으로 다가왔다. 놀랐다. 사실 좀 쫄았다.

“거기서 뭐하는 거요?”
“아 네? 그냥 사진 좀 찍고 있었는데요.”

순간 담쟁이 사진 찍다가 ‘이거 도둑놈 아닌가’ 하는 눈빛 세례를 받았던 경험이 재생되었다. 어서 여길 뜨자.

“뭘 그렇게 찍어?”
“아 여기 이거 매달려 있는 꽃이 예뻐서요.”
“그게 이뻐요?”

아 이건 뭐지. 갑자기 말투가 달라졌다. “‘-요’도 붙었다. 급 친근 모드다.

“네. 햇빛 받으니까 반짝거려서 예쁘네요.”
“(씨익 웃으시며) 그게 이쁘지. 말도 못하게 이쁘지.”
“(안도하며) 네네. 그러네요. 건물 여기 저기 누가 달아놓으셨더라고요.”
“일루 와봐. 일루 좀 와봐.”
“네?”
“일루 좀 와보라니까 일루. (따라오라 손짓까지 하신다. 안따라가면 큰일 날 분위기. 철제 문을 열고 다세대 주택 옆으로 난 좁은 통로로 들어가신다.) 얼마 전에 이사와서 여길 내가 싹 치웠어. 혼자서 다. 얼마나 지저분하던지. 근데 다 치우고 났는데 그게 한보따리 나오더라구.”
“아…”
“그런데 이게 너무 이쁜 거야. 너무 너무 이쁜거야. 이거 봐 이거. 이거 진짜 이쁘지않아?”
“네 정말 예쁘네요.”
“(신이 나셔서) 그래 내가 이걸 다 정리를 해가지고 여기다가 놔뒀지. (대형 비닐 봉다리를 푸시며) 이게 이렇게 많더라니까.”
“정말 엄청 많네요.”
“그래 그래. 근데 젊은이가 그게 이쁘다고 하니까… 이쁜 거 볼 줄 아네. 진짜. 사진 찍고 있는 거 보니까 좀 주고 싶어서 그래.”
“아 안주셔도 되는데요. 사진 찍어서 괜찮은데.”
“아니 사진은 사진이고. 이건 어디 가서 돈주고 사려고 해도 절대 못산다니까. (한웅큼 꺼내시며) 이거 내가 줄 테니까 가져가. 이쁘잖아.”

걸어서 십여 분 거리, 중간에 살 것들도 있는데 저걸 들고 다니기가 심히 불편할 듯하다.

“아 제가 집이 그렇게 가깝지 않아서 들고 가기도 좀 그래서요.”
“그래?”
“네네.”
“흠…. (순간 정적)”
“안주셔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럼 기다려. 내가 봉지 따로 줄 테니까 싸가지고 가. 이거 가져가서 아무렇게나 걸어놔도 이뻐. 많으면 나눠주고.”
“아 네네.”
“잠깐 기다려. 내 곧 나올게.”

졸지에 조화를 손에 받아들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이내 봉지를 가지고 나오시는 할아버지.

“자 여기다 가져가면 되겠네. 내가 이거 지금 잘라서 집을 다 꾸며놨잖아.”
“네 그러네요. 건물 여기 저기 보이네요.”
“내가 나이가 몇이야. 여든 하나야. 근데 택시 운전을 해요. 이것도 다 내가 다듬어서 꾸미고 있어.”
“아 정말 수고 많으셨겠네요.”
“그래도 기분이 좋잖아. 예쁘니까 보면 기분 좋아지고. 이거 다 꽃 보면서 서로 화목하게 살자고 하는 거야. 사이좋게 살자고.”
“네네. 좋네요. ^^”
“이쁘게 잘 해놓고, 남으면 누구 또 주고 그래.”
“네, 감사합니다.”

산책 길에 졸지에 조화 한뭉치를 들고 왔다. 여든을 넘긴 할아버지에게 ‘이쁘잖아’ 소리를 몇 번 들었는지 모르겠다. 새로 이사오신 집에서 사이좋게, 화목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

근데 이거 어떡하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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