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우화] 역사의 변화에 무임승차란 없습니다

Posted by on Nov 28,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아래 이야기는 ‘무임승차’라는 단어를 단초삼아 일종의 우화를 쓴 것일 뿐 현 정치지형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무임승차론” 이야기를 읽으니 성경의 비유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뼈대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일손이 필요해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무난한 일삯, 하루 1 데나리온 을 준다는 조건이었죠.

일꾼들이 한 번에 다 모였으면 좋았겠지만 꽤 큰 시차를 두고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오전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에서, 반나절 일한 사람들, 마감 바로 전에 와서 잠시 일손을 거든 사람들까지 있었죠.

하루 노동을 마치고 일당을 나누어 주는 시간,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종일 일한 사람, 잠깐 일한 사람 관계 없이 모두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셈법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불공평하다며 따지는 소리가 이리 저리서 터져나왔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말했습니다. 자신은 처음부터 일당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였고, 그것을 주었는데 무엇이 부당하냐고, 얼마를 일했건 오늘 수고한 이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고자 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주인은 불공평하고 공의롭지 못한 사람일까요?

===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 또한 ‘무임승차론’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 듯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쉽게 하루 일당을 벌지?’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던 겁니다.

대학 초년, 세상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자유나 평등, 해방과 같은 단어들을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집어 삼켰습니다. 커다란 개념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때였죠.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이리 저리 모임이란 모임은 죄다 참여하려 했고, 여러 세미나에도 열심히 나갔죠. 다양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종종 저를 찾아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 친구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 같지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삶 속에서 체험으로 깨달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평등’이나 ‘자유’ 같은 이야기를 하지? 저렇게 막 말해도 되는 걸까?’

특정한 개념을 너무 쉽게 말하는 듯한 친구들에 대한 불만이었죠. 사실 그들이나 저나 별반 다를 게 없었음에도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던 듯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디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자유도, 평등도, 해방도 누군가 선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개념들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인류가 함께 만들어 온 생각의 도구이자 사회적 목표, 나아가 삶의 양식이지요. 당연히 한 사람이 소유할 수도 없고 특허를 낼 수도 없습니다. 먼저 알았다고 뻐길 것도 없고 조금 늦게 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그런 개념을 만나고 사회를 보는 눈이, 나아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하면 될 일입니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간과했던 저는 이런 개념들이 ‘너무 쉽게 소비되는 듯한’ 상황이 적잖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사실 저 개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같이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했겠죠. 정말 한심해 보였을 겁니다.

진보를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진보일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좋은 것을 나누기 위함이니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소수가 좋은 것을 만들어서 선심쓰듯 나누어 주려는 게 아니라, 과정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 즉 함께 사회를 개선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각자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무임승차’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애시당초 기차의 소유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인이고 우리 모두가 승객입니다. 아니 애시당초 모든 인간들이 모여 역사라는 기차를 구성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기차에 먼저 탔다고 기차의 주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합니다. 먼저 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보상임을 잊은 사람들, 먼저 탄 사람의 책무를 잊은 사람들 말입니다.

존경하는 하워드 진 선생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투를 따라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변화에 무임승차란 없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