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이후를 생각하며 쓴 광장 메모 몇

Posted by on Dec 6, 2016 in 단상 | No Comments

1. 광장에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나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끌고 나왔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은 면이 있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2. 장애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굽이치는 군중 속에서 휠체어를 보진 못했다. (내가 못본 것이지만 한달 여의 관찰이니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에서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3. 재벌 구속 구호가 간간히 터져나왔으나 탄핵 구호에 비해 군중들의 반응이 약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솔직히 나만 해도 재벌에 대해 너무 모른다.

4. 청와대 쪽으로 향하는데 돌아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 광장에 나와 있었지만 돌아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조금 더 밝아 보였다.

5.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온 경우가 종종 보였다. 동행한 성인은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서 정치를 경험한 이들과 ‘정치를 글로 배운’ 아이들, ‘어른에게 정치를 배운’ 아이들과 ‘친구들과 함께 정치를 배운’ 아이들은 사뭇 다를 것 같다.

6. 수많은 패러디, ‘신박한’ 이름의 깃발들이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집회를 규정할만한 힘은 아니었으나 규모에 비해 큰 주목을 받았다. 작디 작은, 자본주의의 가장자리와 바깥 세력들이 존재를 드러내는 법에 대해 생각케 한다.

7. 여느 집회에서는 보기 힘든 ‘집회참가 겸 데이트’가 꽤 많이 보였다. (아 그때 앞에 서 있던 정장커플님들하, 뭘 먹고 그렇게 키가 컸나요. ㅠㅠ)

8. 이명박 정권 규탄 구호는 듣기 힘들었다. MB에 대한 언급을 하는 손피켓을 한두 번 본 게 전부다.

9.소셜미디어가 집회 동영상과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광장인증샷’이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자리잡은 듯했다. 민주주의의 축제를 위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10. 뒷골목은 여전히 북적였다. 밥먹기와 집회 참가가 뒤엉켜 있었다. 나 또한 두어 번 밥을 먹고 다시 집회에 합류했다. 구호 외치다가 돌아서서 밥. 배채우고 다시 행진. 삶과 정치에 대한 유비로 느껴졌다.

우리는 이 거대한 시민혁명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2016년_시민혁명_아카이브_프로젝트 를 모두의 힘으로 이루어 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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