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신이 아니며 우리는 시지프가 아니다

Posted by on Jan 2,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다시 열심히 지어 봐. 원래 니들이 지은 거잖아.”

한 학생이 “~한 태도를 소지[所持]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가지다’를 써야 할 상황인데 ‘소지하다’를 사용한 것이다. 시험 문제였다면 어색한 표현의 예시로 제시될 법하다. 학생의 작은 실수에서 카멜레온처럼 태도를 바꾸고, 기억을 수시로 생성, 변형, 삭제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모든 상황에서 완벽히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일정한 태도를 지키며 살아간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편해서가 아니라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을 함께 짓기 위함이다. 그래서 ‘지킨다’는 표현을 쓰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태도가 시시각각 변한다면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태도에 따라 기억이 바뀐다면 함께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는 기억과 태도가 쌓아 올린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허나 최근 언론과 청문회에 등장하는 이들에게 태도는 ‘소지’하는 것이고, 필요에 따라 교체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몸에 배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태도가 아니라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소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태도. 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기억. 이를 여전히 ‘태도’나 ‘기억’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 태도를 소지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 기억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 소지 여부는 내가 결정할 문제다.”

그들이 이런 취지의 발언으로 개인의 자유를 구가하는 사이 사회적 신뢰는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핵심 구성원들이 깨뜨린 신뢰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

철저히 구조에 맞추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광장에서는 유독 자신만의 기억과 태도를 고집한다. 그들에겐 권력의 자연스런 표출일지 모르지만 사회적 신뢰를 쌓기 위해 인고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악랄한 경멸에 다름 아니다.

헌법적 가치도, 교육적 정의도, 시민에 대한 신뢰도 다 무너뜨린 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다시 열심히 지어 봐. 원래 니들이 지은 거잖아.”

그들은 신이 아니며 우리는 시지프가 아니다. 하지만 거대한 형벌 속에서 괴로움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서럽다. 이 부조리한 신-시지프의 관계를 평등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만들 정치에 대한 소망. 그게 광장의 민심 아닐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