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지> 불온서적 유감

Posted by on Jan 10,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검찰이 ‘노동자의책’ 이진영 대표를 구속하면서 <페다고지>를 “민중의식화를 목표로 하는 민중교육론을 전개한 것이며 폭력투쟁을 정당화하고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논리를 전개한 불온서적”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여기에 한수 더 떠서 문화관광부의 ‘우수도서’ 선정과 관련해 ‘문제서적’을 선정하지 말라고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착오적 처사라는 점을 차치해 두더라도 이런 발상이 우습게 보이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다.

1. 특정 도서를 읽지 않고 ‘불온서적’ 혹은 ‘문제서적’으로 판단했다면 이 자체로 문제다. 읽지도 않은 책의 내용을 알 수는 없는 일이고, 내용을 알 수 없는 책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2. 책을 읽고도 <페다고지>를 ‘불온서적’으로 판단했다면 이들의 문해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3. 게다가 <페다고지>는 이제 명실상부한 고전 아닌가? 참고로 구글 스칼라 데이터베이스를 기준으로 <Pedagogy of the Oppressed>의 인용 횟수는 거의 6만에 육박한다. 인문사회과학, 교육학을 통틀어 이 정도로 많이 인용된 도서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역설적이게도 <페다고지>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페다고지> 등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검찰이나 읽어보지도 않은 책들을 마구잡이로 매도한 대통령일 것이다. 문해력 저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했던 대표적인 학자/실천가가 바로 프레이리고 그의 대표작이 <페다고지>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0여 년 전, 공부를 하러 떠난다는 말에 한 후배가 불쑥 물었다.

“어떤 거 공부하려고 하세요?”
– “리터러시나 사회문화이론 같은 쪽 관심이 많아요. 전공은 아니지만 Critical pedagogy(비판교육학)도 좀 공부하고 싶고요.”
“Critical pedagogy요?”
– “네네.”
“(눈썹을 치켜올리며) 크리티컬? 요즘에 누가 그런 걸 해요?”
– “(흠칫 당황) 하는 사람은 해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에게 “요즘 누가 그런 걸 하냐?”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의 황당함과 짜증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근데 읽어보기는 하고 말하는 거예요?”

어제 오늘 황당 기사들을 읽으며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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